표본실의 청개구리

1

무거운 기분의 침체와 한없이 늘어진 생의 권태는 나가지 않는 나의 발길을 남포까지 끌어 왔다.

귀성한 후 칠팔 개삭간의 불규칙한 생활은 나의 전신을 해면같이 짓두들겨 놓았을 뿐 아니라 나의 혼백가지 두식하였다. 나의 몸의 어디를 두드리든지 알코올과 니코틴의 독취를 내뿜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피로하였다. 더구나 육칠월 성하를 지내고 겹옷 입을 때가 되어서는 절기가 급변하여 갈수록 몸을 추스리기가 겨워서 동네 산보에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친구와 이야기하면 두세 마디째부터는 목침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무섭게 앙분한 신경만은 잠자리에도 눈을 뜨고 있었다. 두 홰, 세 홰 울 때까지 엎치락뒤치락거리다가 동이 번히 트는 것을 보고 겨우 눈을 붙이는 것이 일 주일 간이나 넘은 뒤에는 불을 끄고 드러눕지를 못하였다.

그 중에도 나의 머리에 교착하여 불을 끄고 누웠을 때나 조용히 앉았을 때마다 가혹히 나의 신경을 엄습해 오는 것은, 해부된 개구리가 사지에 핀을 박고 칠성판 위에 자빠진 형상이다.

내가 중학교 2년 시대에 박물 실험실에서 수염 텁석부리 선생이 청개구리를 해부하여 가지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장을 차례차례로 끌어내서 자는 아기 누이듯이 주정병에 채운 후에 옹위하고 서서 있는 생도들을 돌아다보며 대발견이나 한 듯이,

“자 여러분, 이래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시오.”

하고 뾰죽한 바늘 끝으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는 대로 오장을 빼앗긴 개구리는 진저리를 치며 사지에 못박힌 채 벌떡벌떡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8년이나 된 그 인상이 요사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서 아무리 잊어 버리려고 애를 써도 아니 되었다. 새파란 메스, 달기똥만한 오물오물하는 심장과 폐, 바늘 끝, 조그만 전율…. 차례차례로 생각날 때마다 머리끝이 쭈뼛쭈뼛하고 전신에 냉수를 끼얹는 것 같았다.

남향한 유리창 밑에서 번쩍 쳐드는 메스의 강렬한 반사광이 안공을 찌르는 것 같아 컴컴한 방 속에 드러누웠어도 꼭 감은 눈썹 밑이 부시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머리맡에 놓인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둔 명도칼이 조심이 되어서 못 견디었다.

내가 남포에 가던 전날 밤에는 그 증이 더욱 심하였다. 간반통밖에 안 되는 방에 높이 매달은 전등불이 부시어서 커 버리면 또다시 환영에 괴롭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으나, 심사가 나서 웃통을 벗은 채로 벌떡 스러져 나가자 또 머리를 엄습하여 오는 것은 수염 텁석부리의 메스, 서랍속의 면도다. 메스…… 면도, 메스……잊으려면 잊으려 할수록 끈적끈적하게도 떨어지지 않고 어느 때가지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돌아다니었다. 금시로 손이 서랍으로 갈 듯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괴이한 마력은 억제하려면 할수록 점차 더하여 왔다. 스스로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나소 소스라쳐 눈을 뜨면 덧문 안 닫은 창이 부옇게 보일 뿐이요, 방 속은 여전히 침적하였다. 비상한 공표가 전신에 압도하여 손끝 하나 까딱거릴 수 없으면서도 이상한 매력과 유혹은 절정에 달하였다.

“내가 미쳤나? 아니, 미치려는 징조인가?”

하며 제풀에 겁이 났다.

나는 잠에 위한 놈 모양으로 이불을 와락 차 던지고 일어나서 서랍에 손을 대었다. 그러나 ‘그래도 손을 대었다가……’ 하는 생각이 전뢰와 같이 머릿속에 번쩍할 제 깊은 꿈에서 깨인 것같이 정신이 반짝 나서 전등을 켜려다가 성냥통을 더듬어 찾았다. 한 개비를 드윽 켜들고 창틀 위에 얹어 둔 양초를 집어 내려서 붙여 놓은 후 서랍을 열었다.

쓰다가 몇 달 동안이나 꾸려둔 원고, 편지, 약갑 들이 휴지통같이 우굴우굴한 속을 부스럭부스럭하다가 미끈하고 잡히는 자루에 집어 넣은 면도를 외면을 하고 꺼내서 창 밖으로 뜰에 내던졌다. 그러나 역시 잠은 못 들었다.

맥이 확 풀리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비져 나왔다. 시체 같은 몸을 고민하고 난 병인처럼 사지를 축 늘어뜨려 놓고 누워 생각하였다.

“하여간 이 방을 면하여야 하겠다.”

지긋지긋한 듯이 방 안을 휘익 둘러본 뒤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디든지 여행을 하려는 생각은 벌써 수삭 전부터 계획이었지만 여름에 한 번 놀러 가 본 신흥사에도 간다는 말뿐이요, 이때껏 실현은 못 되었다.

“어디든지 가야겠다. 세계의 끝까지, 무한에, 영원히, 발끝 자라는 데까지, 무인도! 시베리아의 황량한 벌판! 몸에서 기름이 부지직부지직 타는 남양! 아아.”

나는 그림 엽서에서 본 울창한 산림, 야자수 밑에 앉은 나체의 만인을 생각하고 통쾌한 듯이 어개를 으쓱하여 보았다. 단 일 분의 정거도 아니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힘있는 굳센 숨을 헐떡헐떡 쉬는 풀스피드의 기차로 영원히 달리고 싶다…. 만일 타면 현기가 나리라는 염려만 없었으면 비행기! 비행기! 하며 혼자 좋아하였을지도 몰랐었다.

2

내가 두어 달 동안이나 집을 못 떠나고 들어앉았는 것은 금전의 구애가 제일 원인이었지마는 사실 대문 밖에 나서려도 좀처럼 하여서는 쉽지 않았다.

그 이튿날 H가 와서 오늘은 꼭 떠날 터이니 동행을 하자고 평양 방문을 권할 때에는 지긋지긋한 경성의 잡답을 등지고 떠나서 다른 기분을 얻으려는 욕구와 장단을 불구하고 하여간 기차를 타게 될 호기심에 끌리어서,

“응, 가지, 가지.”

하며 덮어놓고 동의는 하였으나 인제 정말 떠날 때가 되어서는 떠나고 싶은지 그만두어야 좋을지 자기의 심중을 몰라서, 어떻게 된 셈도 모르고 H에게 끌려 남대문역까지 하여간 나왔다.

열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승객은 입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급히 표를 사 가지고 재촉하는 H를 따라갔다. 시간이라는 세력이 호불호, 긍불긍을 불문하고 모든 것을 불가항력하에서 독단하여 끌고 가게 된 것을 나는 오히려 다행히 알고, 되어 가는 대로 되라고 생각하며 하나씩 풀려 나가는 행렬 뒤에 섰었다. 그러나 검역 증명서가 없다고 개찰구에서 H와 힐난이 되는 것을 보고 나는 행렬에서 벗어나서 또다시 아니 가겠다고 하였다.

심사가 난 H는 마음대로 하라고 뿌리치며 혼자 출장 주사실로 향하다가 돌쳐 와서 같이 끌고 들어갔다.

백 촉이나 되는 전등 밑에서 히스테리컬한 간호부가 주사침을 들고 덤벼들 제 나는 반쯤 걷어 얼렸던 샤쓰를 내리며 돌아서 마주섰다. 그러나 간호부의 핀잔과 재촉에 마지못하여 눈을 감고 한 대 맞은 후 황황히 플랫폼으로 들어가서 차에 올랐다.

차에 올라 앉아서도 공연히 후회를 하고 앉았었으나 강렬한 위스키의 힘과 격심한 전신의 동요, 반발, 차바퀴 달리는 소리, 암흑을 돌파하는 속력, 주사 맞은 어깨의 침통…. 모든 관능을 일시에 용약케 하는 자극의 와중에서 모든 것을 잊고 새벽에는 쿨쿨자리만큼 마음이 가라앉았다. 덕택으로 오늘 밤에는 메스도 번쩍거리지 않고 면도도 뛰어나오지 않았다. 동이 틀락말락하여서 우리들은 평양역에 내렸다.

남포행은 아직 이삼십 분이나 있는 고로 우리들은 세면소에서 세수를 하고 대합실로 나왔다. 나는 부석부석 붉은 눈을 내리깔고 소파 끝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서,

“난 예서 좀 돌아다닐 테니….”

내던지듯이 한 마디를 불쑥 하고 H를 마주 쳐다보다가,

“혼자 가서 Y군을 만나 보고, 오늘이라도 같이 이리 오면 만나 보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돌아다니다가 밤차로 갈 테야.”

하며 H의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서 나왔다.

“응? 뭐야? 그 왜 그래…. 또  미친증이 난 게로군.”

하며 H는 벗어 들었던 레인 코트를 뒤집어쓰면서 쫓아 나와 붙든다.

“… 사람이 보기 싫어서…. 사실 X 군과 만나기로 별로 이야기 할 것도 없고.”

하며 애원하듯이 힘없는 구조로 한 마디 하고,

“영원히 흘러가고 싶다. 끝없는 데로….”

혼잣말처럼 힘을 주어 말을 맺고 훌쩍 나와 버렸다.

H도 하는 수 없이 테이블에 놓았던 트렁크를 들고 따라 나왔다.

우리 양인은 대동강가로 길을 찾아 나와서, 부벽루로 훤히 동이 틀까말까한 컴컴한 길을 소리 없이 걸었다.

한바탕 휘돌아서 내려오다가 종로에서 조반을 사 먹고 또다시 부벽루로 향하였다. 개시를 하고 문전에 물을 뿌린 뒤에 신문을 펴 들고 앉았는 것은 청량하고 행복스럽게 보였다.

아까 내려올 제는 능라도서 저편 지평선에서 주홍의 화염을 뿜으며 날름날름 하던 아침해가 벌써 수원지 연통 위에 올라서 천변식목 밑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곁뺨을 눈이 부시게 내리쬐었다.

칫솔을 물고 바위 위에 섰는 사람, 수건을 물에 담그고 세수하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무심히 내려다보다가 자기도 산뜻한 물에 손을 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얕은 곳을 골라서 물가로 뛰어 내려갔다.

H도 쫓아 내려와서 같이 손을 담그고 앉았다가,

“X군, 오후 차로 가지?”

“되어 가는 대로….”

다소 머리의 안정을 얻은 나는 뭉쳤던 마음이 풀어진 듯하였다. 나는 아침 햇빛에 반작이며 청량하게 소리 없이 흘러 내려가는 수면을 내다보며 이렇게 대답하고 ‘물은 위대하다’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 때에 마침 뒤 동둑에서 누군지 이리로 점점 가까이 내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우리는 무심히 힐끗 돌아다보았다. 마른 곳을 골라 디디노라고 이리저리 뛸 때마다 등에까지 철철 내리덮은 장발을 눈이 움푹 패인 하얀 얼굴 뒤에서 펄럭펄럭 날리면서 앞으로 가까이 오는 형상도 도쿄 근처에서 보던 미술가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이 기괴한 머리의 소유자는 너희들의 존재는 나의 의식에 오르지도 않는다는 교만한 마음으로인지 혹은 일신에 모여드는 모든 시선을 피하려는 무관심한 태도로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오른손에 든 짤막한 댓개비를 전후로 흔들면서 발끝만 내려다보며 내 등 뒤를 지나 한간통쯤 상류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도 우리와 같이 손을 물에 성큼 넣고 불쩍불쩍 소리를 내더니 양치를 한 번 하고 벌떡 일어나서 대동문을 향하여 성큼성큼 간다.모자도 아니 쓴 장발과 돌돌 말린 때묻은 철겨운 모시박이 두루마깃자락은 오른편 손가락에 끼우고 교묘히 돌리는 댓가지와 장단을 맞춰서 풀풀풀풀 날리었다.

“오늘은 꽤 이른걸.”

“핫하! 조반이나 약조하여 둔 데가 있는 게지.”

하며 장발객을 돌아서 보다가 서로 조소하는 소리를 뒤에 두고 우리는 손을 씻으면서 동쪽으로 올라왔다.

진정한 행복은 저런 생활에 있는 게야, 하며 혼자 생각하였다. 우리는 황달이 들어가는 잡초에 싸인 부벽루 앞 축대 밑까지 다다랐다. 소경회루라 할 만큼 텅 빈 누내에는 뽀얀 가을 햇빛이 가벼운 아침 바람에 안기어 전면에 흘러들어왔다. 좀 피로한 우리는 누내에 놓인 벤치에 걸터앉으면서 여기저기 매달린 현판을 쳐다보다가,

“사람이란 그럴까, 저것 좀 보아.”

좌편에 달린 현판 곁에 붙인 찰을 가리키며 나는 입을 열었다.

자기의 존재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려는 것이 본능적 욕구라면 그만이지만 저렇게까지라도 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보면…. 참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고사하고 지금 지나온 그 절벽에 역력히 새긴 이모 김모란 성명은 대체 누구더러 보라는 것이야…. 이러구서 밥이 입으로 들어갔으니 좋은 세상이었지.”

나는 금시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올라와서 벌떡 일어나와 성벽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섰었다.

“그것이 소위 유방백세라는 것이지.”

H도 일어나며,

“그렇게 내려다보고 섰는 것을 보니… 입포리가 없는 게 한이로군….”

“내가 쫄지요.”

하고 나는 고소하였다.

“적어도 쫄지요의 고통은 있을 테지.”

“그야 … 현대인 쳐놓고 누구나 일반이지.”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잠시 섰다가 을밀대로 향하였다.

외외히 건너다보이는 대각은 엎드러지면 코 닿을 듯하여도 급한 경사는 그리 쉽지 않았다. 우리는 허위단심 겨우 올라갔다. 그러나 대상의 어떤 오복점 광고의 벤치가 맨 먼저 눈에 띌 때 부벽루에서는 앉기까지 하여도 눈 서투르지 않던 것이 새삼스럽게 불쾌한 생각이 났다. 나는 눈을 찌푸리고 잠시 들여다보다가 발도 들여놓지 않고 돌쳐서서 그늘진 서편 성 밑으로 내려왔다.

높은 성벽에 가리운 일면은 아직 구슬 이슬이 끝만 노릇노릇하게 된 잔딧잎에 매달려서 어디를 밟든지 먼지가 앉은 구두 끝이 까맣게 반짝거렸다. 나는 성에 등을 기대고 앞에 전개된 광야를 맥없이 내려다보고 섰다가 다리가 풀리어서 그대로 털썩 주저 앉았다. 엄동에 음산한 냉방에서 끼치는 듯한 쌀쌀한 찬바람이 늘어진 근육에 와 닿을 때 나는 정신이 반짝 들었다.

그러나 다리를 내던지고 벽에 기대어서 두 손으로 이슬 방울을 흩뜨리며 앉았는 동시에 사지가 느른하고 졸음이 와서 포켓에 넣어 둔 신문지를 꺼내서 펴고 드러누웠다.

… H에게 두세 번 흔들려서 깬 때는 이렁저렁 삼십 분이나 지났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으니까 H는 단장 끝으로 조약돌을 여기저기 딱딱 치며 장난을 하다가 소리를 내며 깔깔 웃으면서,

“아, 예가 어덴 줄 알고 잠을 자아? 그리고 잠꼬댄 무슨 잠꼬대야? 왜 얼굴이 저렇게 뒤틀렸어?”

나는 멀거니 H의 주름 많은 얼굴을 쳐다보고 앉았다가 ‘으응……’ 하며 무엇이라고 입을 벌리려다가 하품에 막히어 말을 끊고, 일어나서 두 손을 바지 포켓에 지르고 이리저리 거닐었다. H가 내 꽁무니의 앉았던 자리가 동그랗게 이슬에 젖은 것을 보고 놀라는 데에는 대꾸도 아니 하고 나는 좀 선선한 증이 나서 양지로 나서면서 가자고 H를 끌었다.

“왜 그래? 무슨 꿈이야?”

H는 따라오며 물었다.

“… 죽은 꿈… 아주 영영 죽어 버렸더면… 좋았을걸….”

나는 무엇을 보는 것도 없이 앞을 멀거니 내다보며 꿈의 시종을 차례차례로 생각하여 보다가 이같이 내던지듯이 한 마디 하고 궐련을 꺼내 물었다.

“자살?”

H는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 미인의 손에… 나 같은 놈에게 자살할 용기나 있는 줄 아나? 아아하.”

“누구에게? 미인에게 죽을 지경이면 한 두어 번 죽어 보았으면…… 해해해.”

“참 정말… 하여간 아무 고통 없이 공포도 없이 죽는 경험만 해 보고 그리고도 여전히 살아 있을 수만 있으면 여남은 번이라도 통쾌해…. 목을 졸라매일 때의 쾌감! 그건 어떤 자극으로도 얻을 수 없는 거야.”

나는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썩어가는 듯한 심사를 이기지 못하여 입을 다물고 올라가던 길로 천천히 내려오다가 H의 묻는 것이 귀찮아서 다점 앞으로 지나오며 꿈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 무슨 일이었던지 분명치는 않으나… 아마 쌀을 찧어서 떡을 만들었는데 익지를 않았다고 해서 그랬던지… 하여간 흰 가루가 뒤바른 한 손을 들고 마루 끝에서 어정버정하다가 인제는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처럼 손에 들었던 수건으로 목을 매고 덧문을 첩첩이 닫은 방 앞 툇마루 위에 반듯이 드러누우니가, 어떤 바짝 말라서 뼈만 남은 흰 손이 머리맡에서 슬그머니 넘어와서 목에 매인 수건의 두 자락을 좌우로 슬금슬금 졸라대었다.

그 때에 나는 이것이 당연히 당할 약조가 있었다는 것처럼 어떠한 만족과 안심을 가지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드러누웠었다. 그 때에 …… 차차 목이 메어 올 때의 이상한 자극은 낙지 이후에 처음 경험하는 쾌감이었다. 그러나 무슨 까닭에 이같이 일찍 죽지 않으면 안 되는가…… 참 정말 죽었는가 하는 의문이 나서 몸을 뒤틀며 눈을 번쩍 떠 보았다….

“깜짝 놀라 일어날 때에 빙그레하며 웃고 섰는 군은 악마가 아닌가 생각하였어…. H군의 웃음은 늘 조소하는 듯이 보이지만 아까는 참말 화가 나서….”

실상 아까 깨었을 때에 제일 심사가 나는 것은 꿈자리가 사나운 것보다도 H가 조소하듯이 빙그레 웃고 섰는 것이었다.

“… 그러나 암만 생각하여도 희한한 것은 처음부터 눈을 감고 누웠는데 어찌하여 그 ‘손’의 주인이 여성이었다고 생각되는지, 내가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어….”

이야기를 마친 후 나는 말할 수 없는 심화가 공연히 가슴에 치미는 것 같아서 올라올 제 앉았던 강물가로 뛰어내려가서 세수를 하였다.

3

남포에 도착하였을 때는 벌서 오후 두 시가 훨씬 넘었었다. 출입하였던 Y는 방금 들어와서 옷을 벗어 던지고 A와 마주앉아서 지금 심방하고 온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우리들을 보고 놀란 듯이 뛰어나와 맞아 들였다.우리를 맞은 Y는 웬셈인지 좌불안석의 태도였다.

“P는 잘 있나? 금명간 올라가려고 하였지. 평양서 전화를 하였더면 내가 평양으로 나갈걸. 곤할 테지. 점심은?”

순서 없는 질문을 대답할 새도 없이 연발하였다. 나는 간단간단히 응대하고 졸리다고 드러누웠다.

Y는 무슨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좌중의 흥을 돋우려고 애를 쓰는 듯이 이 사람 저 사람 쳐다보며 입을 쭝긋쭝긋하다가 나를 건너다보며,

“… 웬셈이야? 당대의 원기는 다 어디 갔나? 그 표단은? 하하하.”

“글쎄…. 그것도 인제 좀 염증이 나서….”

나도 시든 웃음을 띄며,

“여기까지 가지고 오긴 왔지!”

하고 누운 채 벗어 넣은 외투를 잡아당기어 찻간에서 먹다 남은 위스키병을 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내미니까 일동은 하하하 웃으면서 잠자코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본다.

“그러나 그것 큰일났군. 제행무상을 감하였나…. 무표단이면 무인생이라던 것은 취소인가.”

Y는 다소 과장한 듯이 흐흐흐 느끼며 웃었다.

“그런데 표단이란 무엇이야?”

영문을 모르는 A는 Y에게 묻고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흥흥흥, 한 마디로 쉽게 설명하면 위선 X군 자신인 동시에 X군의 인생관을 심벌한 X군의 술병이랄까.”

“응? X군의 인생관…인 동시에 X씨 자신의… 무엇이야? 어디 나 같은 놈은 알아들을 수가 있나?”

하며 A는 손을 꼽다가 웃고 말았다.

“아니랍니다. 내가 일전에 서울서 어떤 상점에 갔던 길에 표단 모양으로 만든 유리 정종병이 마음에 들기에 사 가지고 왔더니 여럿이 놀린답니다.”

나도 이같이 설명을 하고 웃어 버렸다.

“그러나 이 술을 선생한테나 갖다 주고 강연이나 들을까?”

H는 병을 들어서 레테르에 쓰인 글자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남포에도 표단이 있는 게로군….”

H도 웃었다.

“응! 그러나 병유리가 좀 흐려…. 닦는 유리(스리가라쓰-모래로 간것)랄까.”

일동은 와하하 하며 웃었다. 나는 눈을 감고 드러누워서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다시 이어나 앉으며,

“A씨도 표단당에 한 몫은 가겠지요.”

하고 위스키 병을 들어서 한 잔 따라 권하고 나도 반 배를 받았다.

“그래 여기 표단은 어때?”

하며 H는 나를 쳐다보는 모양이었으나 나는 술을 마시노라고 못 보았다.

“… 별로 표단을 달고 다니지는 않지만 3원 50전에 삼층집을 지은 대건축가인데….”

“3원 50전에? 하하하, 미친 사람인 게로군?”

H가 웃었다.

“글쎄 미쳤다면 미쳤을까…. 그러나 인생의 최고 행복을 독점하였다고 나는 생각해….”

Y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였다. Y와 H가 이야기하는 동안에 나는 A와 잡지계에 관한 이삼 문답을 하다가 이야기를 들으라고 H가 부르는 바람에 나도 말참례를 하였다.

“술 이야기는 아니나 3원 50전에 삼층집을 지은 대철인이 있단 말이야….”

Y는 다시 설명을 하고 어느 틈에 빈 병이 된 것을 보고,

“술이 없군. 위스키를 사 올까.”

하더니 하인을 불러 명하였다.

“옳은 말이야. 철학자가 땅두더지로 환장을 하였거나 위인이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3원 아니라 단 3전으로 30층을 지었거나 누가 아나… 표단 이상의 철학서는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를 않으니까.”

나는 냉소를 하면서 또다시 A에게로 향하였다.

“그러나 군은 무슨 까닭에 술을 먹는가?”

“논리는 없지. 다만 취하려고.”

“그리게 말이야… 군은 아무것에도 붙일 수 없었다. 아무것에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알코올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비통하고 비참은 하나 그 중에서 위안을 얻기에 먹는 게 아닌가. 그러나 결코 행복은 아니다. 그는 고사하고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알코올 이상의 효과가, 다만 위안뿐 아니라 행복을 얻을만한 것이 있다 하면 군은 무엇을 취할 터이냐는 말이야. 하하하….”

“알코올 이상의 효과? 광증이냐, 신념이냐, 이 두가지밖에 없을 것이요…. 그러나 오관이 명확한 이상에, 피로.권태.실망……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이상… 그것도 광인으로 일생을 마칠 숙명이 있다면 하는 수 없겠지만 – 할 수 없지 않은가.”

주기가 들수록 나는 더욱 더 흥분이 되어 부지불식간에 한 마디 한 마디씩 힘을 들여 명확한 악센트를 붙여서 말을 맺고,

“하여간 위선 먹고 봅시다. A공, 자….”

하며 잔을 A에게 전하였다.

“그러나 A군, 톨스토이즘에다가 윌슨이즘을 가미한 선생의 설교를 들을제 나는 부럽던걸.”

술에 약한 Y는 벌써 빨개진 얼굴을 A에게 향하고 동의를 구하였다.

“오늘은 좀 신기가 불편한데…. 연일 강연에 목이 쉬어서 이야기를 못하겠달 제는 사람이 가가 막혀서…. 하하하.”

A는 Y와 삼층집에 갔을 때의 일을 꺼내었다.

“듣지 않아도 세계 평화론이나 인류애쯤 떠드는 게로군.”

하며 나는 윗목으로 나가 드러누웠다.

아랫목에서는 Y를 중심으로 하고 삼층집 주인의 이야기가 어느 때까지 끝이 아니 났다. 가다가다 와아 하고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에 나는 소르르 오는 잠이 깨고 깨고 하다가 종내 잠을 잃어서 나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Y가 두 발을 쳐들고 엉덩이로 이리저리 맴을 돌면서 삼층집 주인이 자기집에 문이 없어도 출입이 자유자재라고 자랑하던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 여럿이 웃는 통에 나도 눈을 떠 보고 일어났다.

약간 취기가 오른 나는 찬바람도 쐬고 싶고 또 어차피에 오늘 밤은 평양에 나가서 묵을 작정인 고로 정거장 가는 길에 삼층집 아래를 가고 싶은 생각이 나서,

“우리 구경 가 볼까?”

하고 Y에게 물었다.

“글쎄 좀 늦지 않았을까?”

하며 Y는 시계를 꺼내 보더니,

“아직 다섯 시가 못 되었군…. 그러나 강연은 못 할걸! 보시다시피 역사를 벌여 놓고 매일 강연에 목이 쉬어서….”

하며 흉내를 내고 또 웃었다.

네 청년은 두어 시간 동안의 흥소훤담에 다소 피로를 느낀 듯이 모두 잠자코 석양판에 갑자기 번잡하여 오는 큰길로 느럭느럭 걸어 나왔다.

4

황해에 잠긴 석양은 백운을 뚫고 흘러 멀리 바라보이는 저편 이층집 지붕에 은빛으로 반짝거리었다.

Y의 집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축동거리를 일정쯤 북으로 가다가 십자로에서 동으로 꼽쳐 새 거리로 들어섰다. 왕래가 좀 조용하게 되었다. 나는 Y의 말이 과연 사실인가, 실없는 풍자나 조롱을 잘하는 Y의 말이라 혹은 나에게 대한 일종의 우의를 품은 농담이 아닌가 하는 제 버릇의 신경과민적 해석을 하며 따라오다가,

“선생은 원래 무엇을 하던 사람인구?”

하며 Y에게 물었다.

“별로 자세히는 모르지만…. 보통학교 훈도라든가! … A군도 아마 배웠다지?”

“응! 일본 말도 제법 하는데…. 이전에는 그래도 미남자였었는데. 하하하….”

A의 말끝에 Y도 웃으며,

“미남자이었든 추남자이었든 하여간 금년 봄에 한 서너 달 감옥에 들어 갔다가 나온 뒤에 이상하여졌다는데…. 자세한 이유는 몰라….”

“처자는 있나?”

“예, 계집은 친정에 가서 있다고도 하고 놀아났다기도 하나 그 역시 자세한 것은 몰라요.”

라고 Y가 대답을 하였다.

“Y군, 그 계집이 어느 놈의 유혹으로 팔리어서 돌아다니다가 그 유곽에 굴러들어와 있다면 어떨까?”

나는 잠자코 있다가 말을 걸었다.

“흥…. 그리고 매일 찾아가서 미친 체를 부리면….”

Y는 대꾸를 하였다.

새 거리를 빠져 황엽이 되어 가는 잡초에 싸인 벌판 중턱에 나와서 남북으로 통한 길을 북으로 고불뜨려 우정을 바라볼 때는 십여 간통이나 떨어져 보이는 유곽 이층에서는 벌써 전등 불빛이 반짝거리며 흘러나왔다.

“응! 저기 보이는군….”

A가 마주 보이는 나직한 산록에 외따로 우뚝 선 참외 원두막 같은 것을 가리켜 주는 대로 희끄무레한 것이 그 위에서 움질움질하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발길을 재촉하였다.

십여 보쯤 가다가 나는,

“이것이 유곽이야?”

하며 좌편을 가리켰다. 방금 전기가 들어온 헌등이 일자로 총총 들어 박힌 사이로 목욕탕에서 돌아오는 얼굴만 하얀 괴물들이 화장품을 담은 대야를 들고 쓸쓸한 골짜기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부화하다 함보다 도리어 처량히 보였다.

“선생이 여기 덕도 꽤 보지. 강연 한 번에 술 한병씩 주는 곳은 그래도 여기밖에 없어….”

A는 웃으면서 설명하였다.

삼층집 꼭대기에 퍼더버리고 앉아서 희미한 햇발이 점점 멀어 가는 산등성이를 얼없이 바라보고 있던 주인은 우리들이 우중우중 올라오는 것을 힐끔 돌아보더니 별안간에 돌아앉아서 무엇인지 똑딱똑딱 두드리고 있다. 우리는 싸리로 드문드문 얽어맨 울타리 앞에서 들어갈 곳을 찾노라고 이리저리 주저하다가 그대로 넘어서서 성큼성큼 들어갔다.

앞서 들어간 A는 주인이 돌아앉은 삼층 위에다 손을 걸어 잡고 들여다보며,

“선생님! 또 왔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였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A는 소리를 내어 웃으며 잼처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농장 문짝에 못을 박고 있었다. A와 Y는 동시에 H와 나를 돌아보고 눈짓을 하며 소리없이 웃었다.

“… 신기가 그저 불편하신가요? 오늘은 꼭 강연을 들으러 왔는데요.”

이번에는 Y가 수작을 건넸다. 그제야 그는 깜짝 놀란 듯이 먼지가 뿌옇게 앉은 더벅머리를 휙 돌이키며,

“예? 왔소?”

간단히 대답을 하고 여전히 돌아앉아서 장도리를 들었다. 세 사람은 일시에 깔깔 웃었다. 그러나 귀밑부처 귀얄 같은 수염이 까맣게 덮인 주먹만한 하얀 상을 힐끗 볼 제 나는 앗! 하며 깜짝 놀랐다. 감전된 것같이 가슴이 선뜩하며 심한 전율이 전신을 압도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에는 다소 안심된 가슴에 이상한 의혹과 맹렬한 호기심이 일시에 물밀 듯하였다. 중학교 실험실의 박물 선생이 따라온 줄로만 안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무의식하게 경건한 혹은 숭엄한 느낌이 머리 뒤를 떼미는 것 같아서 나는 무심중간에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흥흥하며 웃는 것을 볼 때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무슨 큰 불경한 일이나 하는 것 같아서 도리어 괘씸한 듯이도 보이고 혹은 이 사람이 심사가 나서 곧 뛰어내려와 폭행이나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생겼다.

“선생님! 정말 신기가 불편하신 모양이외다그려!”

A는 갑갑증이 나서 또 말을 붙였다.

“서울서 일부러 손님이 오셨는데 강연을 하시구려. 하….”

때묻은 옷가지며 빨래 보퉁이 같은 것이 꾸역꾸역 나오는 것을 꾹꾹 눌러 디밀면서 고친 문짝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앉았던 주인은 서울 손님이란 말에 귀가 띄었는지 우리를 향하여 돌아앉으며 입을 벌렸다.

“예…. 감기도 좀 들었소이다.”

하고 영채 없는 뿌연 눈으로 나를 유심히 똑바로 내려다보다가,

“…보시듯이 이렇게 역사를 벌여 놓고….

한 번 방을 휘익 둘러다본 후 또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주며,

“요사이 같아서는 눈코 뜰 새도 없쇠다…. 더군다나 연일 강연에 목이 꽉 쉬어서….”

말을 맺고 H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별로 목이 쉰 것 같지는 않았다. Y가 H와 나를 소개하니까,

“예…. 그러신가요? 서울서 멀리 오셨소이다그래.”

반가운 듯이,

“나는 남포 사는 김창억이외다.”

하며 인사하는 그의 얼굴에는 약간 미소까지 나타났다.

“예…. 나는 XXX올시다.”

나는 정중히 답례를 하였다. H도 인사를 마쳤다.

“선생님! 그 용하시외다 그래.…. 이름도 아니 잊으시고…. 하하하.”

H가 놀렸다 창억은 거기에는 대꾸도 아니 하고 나를 향하여,

“좀 올라오시소그래, 아직 역사가 끝이 안 나서 응접실도 없쇠다마는.”

하며 올라오라고 재삼 권하다가,

“제다가 차차 스토브도 들여 놓고 손님이 오시면 좀 들어앉아서 슬잔이나 나누도록 하여야 하겠지마는….”

어긋매인 선반 같은 소위 이층칸을 가리키며 천연덕스럽게 인사치레를 하였다.

세 사람은 깔깔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나 자기의 말에 조금도 부자연한 과장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웃는 것도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힘없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웃는 사람을 내려다보다가 힝하고 코웃음을 치고 외면을 하였다. 나는 이 사람이 미쳤다고 하여야 좋을지 모든 것을 대오하고 모든 것에서 해탈한 대철인이라고 하여야 좋을지 몰랐다.

“너무 황송하여 올라가진 못하겠습니다마는 어떻게 강연이나 좀 하시구려.”

하며 이번에는 H가 놀렸다.

“글쎄, 모처럼 오셨는데 술도 한잔 없어서 미안하외다.”

그는 딴전을 부렸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고 술이야기만 꺼내는 것이 이상하였다.

“여기 온 손님들은 모두 하나님 아들이기 때문에 술을 아니 먹는답니다.”

늘 웃으며 대화를 듣고 섰던 Y가 입을 열었다.

“예? 형공도 예수 믿습니까?”

그는 놀란 듯이 나를 마주 건너다보다가 히히히 웃으며,

“예수꾼도 무식한 놈만 모였니 봅니다. 예수꾼들 기도할 때에 하나님아버지시여! 나의 죄를 구하소서, 아맹…, 하지 않소? 그러나 아앵이란 무엇이오? 맹자 같은 만고의 웅변가더러 버버리라고 아맹이라 하니 그런 무식한 말이 아 어디 있단 말이오! 나를…. 나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할 지경이면 아면이라고 해야 옳지 않습니까.”

강연의 서론을 꺼낸 그가 득의 만면하여 히히 웃는데 따라서 둘러섰던 사람들도 웃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비상한 공상가라는 것을 직각한 외에 웃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었다. 여럿이 따라서 웃는 것을 보고 더욱 신이 나서 강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 지공무사하시외다. 나를…. 이 삼층집을 단 서른 닷 냥으로 꼭 한 달 열사흘 만에 짓게 하신 것이외다…. 하나님의 은택이외다. 서양놈들이 아무리 문명을 했느니 기계가 발달되었느니 하지만 그래 단 서른 닷 냥에 삼층집을 지은 놈이 어디 있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이 와 보시고 칭찬을 하십니다.”

“칭찬을 하시니까 지공무사한 것 같지요.”

H가 한 마다 새치기를 하였다.

“천만에, 이것이 모두 하나님 분부가 있어서 된 것이외다…. 인제는 불의 심판이 끝나고 세계가 일대 가정을 이룰 시기가 되었으니 동서 친목회를 조직하라고 하신 고로 위선 이 사무소를 짓고 내가 회장이 되었으나 각국의 분쟁을 순찰할 감독관이 없어서 큰일이 났소이다.”

일동은 와 웃었다.

“여기 X군이 어떨까요?”

Y는 나의 어깨를 탁 치며 얼른 추천을 하였다.

“글쎄, 해 주신다면 고맙지만….”

세 사람은,

“야…. 동서 친목회 감독 각하!”

하며 한층 더 소리를 높여 웃었다.

아닌게아니라 첨아에 주레주레 매달은 멍석 조각이며 밀감 조각들 사이에 ‘동서 친목회 본부’라고 굵직하게 쓰고 그 옆에 ‘회장 김창억’이라고 쓴 궐련 상자 껍질 같은 마분지 조각이 모으로 매달려 있다. 나는 모자를 벗어 들은 채 양수거지를 하고 서서, 그 마분지를 쳐다보던 눈을 돌이켜서 동서 친목회 회장에게로 향하여,

“회의 취지는 무엇인가요?”

라고 물었다.

“아까 말씀한 것같이 성경이 가르치신 바 불의 심판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구주 대전의 그 참혹한 포연 탄우가 즉 불의 심판이외다그래. 그러나 이번 전쟁이 왜 일어났나요…. 이 세상은 물질 만능, 금전 만능의 시대라 인의예지도 없고, 오륜도 없고, 애도 없는 것은 이 물질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욕에 더럽혀진 까닭이 아닙니까…. 부자, 형제가 서로 반목 질시하고 부부가 불화하며 이웃과 이웃이, 한 마을과 마을이…. 그리하여 한 나라와 나라가 서로 다투는 것은 결국 물역에 사람의 마음이 가리웠기 때문이 아니오니까.

그리하여 약육강식의 대원칙에 따라 세계 만국이 간과로써 서로 대하게 된 것이 즉 구주대전이외다그래. 그러나 인제는 불의 심판도 다아 끝났다, 동서가 친목할 시대가 돌아왔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는 신종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대로 세계 각국으로 돌아다니며 경찰을 하여야 하겠쇠다…. 나도 여기에는 오래 아니 있겠쇠다. 좀더 연구하여 가지고…. 영미법덕으로 돌아다니며 천하명승도 구경하고 설교도 해야 하겠쇠다.”

말을 맺고 그는 꿇어앉아서 선반 위를 부스럭부스럭하더니 먹다가 꺼 둔 궐련 토막을 찾아 내어 물고 도로 앉는다.

“선생님 그러면 금강산에는 언제 들어가실 텐가요?”

A가 놀렸다.

“한 전 다아 돌아다닌 후에 들어가야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합니까. 그 때까지 어떻게 기다릴 수가 있습니까?”

“응….”

그는 눈을 뚱그렇게 뜨고 A를 바라보았다.

“아, 선생님 망령이 나셨나보구먼…. 금강산에 들어가시면 군수나 하나 시켜 주신다더니….”

일동은 박장대소를 하였다.

“응! 가기 전에 시켜 주지!”

그의 하는 말에는 조금도 농담이 없었다. 유창하게 연설 구조로 열변을 토할 때는 의심할 여지없는 어떠한 신념을 가진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금강산에 옥좌는 벌써 되었나요?”

Y는 웃으며 말하였다.

“예, 이 집이 낙성되던 날 벌써 꾸며 놓았답니다.”

하고 여러 사람의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성 중에 김씨가 제일 좋은 성이외다, 옥은 곤강에서 나지만도 금은 여수에서 나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이 너는 김가니 산고수려한 금강산에 들어가서 옥좌에 올라앉아 세계의 평화를 누리게 하라고 하십디다….”

하고 잠자코 가만히 섰는 나의 동정을 얻으려는 듯이 미소를 띄고 바라본다.

“대단히 좋소이다…. 그러나 이 삼층집은 무슨 생각으로 지셨나요?”

나는 이같이 물었다.

“연전 여름 방학에 서울에 올라가서 중등 학교에 일어 강습을 하러 다닐 때에 서양 사람의 집을 보니까 위생에도 좋고 사람 사는 것 같기에 우리 조선 사람도 팔자 좋게 못 사는 법이 어디 있겠소? 기왕이면 삼층쯤 높직이 지어 볼까 해서…. 우리가 그 놈들만 못할 것이 무엇이오. 나도 교회에 좀 다녀 보았지만 그 놈들처럼 무식하고 아첨 좋아하는 놈은 없습디다…. 헷, 그 중에서도 목산지 하는 것들 한참 때에 대원군이나 뫼신듯이 서양놈들이 입다 남은 양복 조각들을 떨쳐 입고 그 더러운 놈들 밑에서 굽실굽실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이 주먹으로 대구리를….”

하며 새까만 거칫한 주먹을 쳐들었다. 그 때의 그의 눈에는 이상한 광채가 돌고 얼굴은 경련적으로 부르르 떨리면서 뒤틀리었다. 나는 무심히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날은 점점 추워오고…. 어떻게 하실 작정인가요?”

나는 화제를 이같이 돌렸다.

“춥긴요, 하나님 품속은 사시 봄이야요…. 그러나 예다가 스토브를 놓지요.”

하고 이층을 가리켰다.

“그래 스토브는 어디 주문하셨소?”

누구인지 곁에서 말참견을 하였다.

“주문은 무슨 주문….”

대단히 불쾌한 듯이 한 마디 하고,

“스토브는 서양놈들만 만들 줄 알고 나는 못 만든답디까…. 그 놈들이 하루에 하는 일이면 나는 한 반나절이면 만들 수 있소이다. 이 집이 며칠이나 걸린 줄 아슈? 단 한 달하고 열 사흘! 서양놈들은 13이란 수가 흉하답디다마는 나는 양옥을 지으면서도 꼭 한 달 열 사흘에 지었다오.”

“동으로 가래도 서로만 갔으면 고만 아니오.”

H가 말대꾸를 하였다.

“글쎄 말이오. 세상놈들이야말로 동으로 가라면 서로만 달아나는 빙퉁그러진 놈뿐이외다…. 조선이 있고 조선 글이 있어도 한문이나 서양놈들의 혀 꼬부라진 말을 해야 사람의 구실을 하는 쌍놈의 세상이 아닙니까.”

한 마다 한 마디씩 나의 동의를 얻으려는 것처럼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며 잠깐씩 말을 멈추다가 나중에는 열중한 변사처럼 쉴새없이 퍼붓는다.

“네, 그렇지 않습니까. 네…. 그것도 바로 읽을 줄이나 알았으면 좋겠지만…. 가령 천지현황하면 하늘천 이렇게 읽으니 일대라 서 놓고 왜 ‘하늘대’하지 않습니까. 창공은 우주간에 유일 최대하기 때문에 창힐이 같은 위인이 일대라고 쓴 것이 아니외니까. 또 ‘흙야’ 할 것을 ‘따지’ 하는 것도 안 된 것이외다. 따란 무엇이외니까? 흙이 아니오? 그러기에 흙토변에 언재호야라는 천자문의 왼쪽 자인 입겻얏자를 쓴 것이외다그래. 다시 말하면 따는 흙이요, 또 우주간에 최말위에 처한 고로 흙톳자에 천자문의 최말자 되는 입겻얏자를 쓴 것이외다.”

우리들은 신기히 듣고 섰다가,

“그러면 쇠금자는 어떻게 되었길래 김가를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하시나요?”

하고 Y가 물었다.

“옳은 말씀이외다. 네…. 참 잘 물으셨소이다….”

깜박했더면 잊었을 것을 일깨워 주어서 고맙고도 반갑다는 듯이 득의 만면하여 그 일사천리의 구변으로 강연을 계속한다.

“사람인 안에 구슬옥을 하지 않았소. 하므로 쇠금이 아니라 사람 구슬 금…. 이렇게 읽어야 할 것이외다.’

일동은 킥킥킥 웃었다.

“아니외다. 웃을 것이 아니외다…. 사람 구실을 하려면 성현의 가르치는 것같이 첫째에 인하여야 하지 않쇠니까. 하므로 사람인 하는 것이외다그려. 그 다음에는 구슬이 두 개가 있어야 사람이지 두 다리를 이렇게(손가락으로 쓰는 흉내를 내이며) 벌리고 선 사이에 딱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도저히 사람 값에 가지 못할 것이외다. 고자는 그것이 없어도 사람이라 하실지 모르나 그러기에 사람 구실을 못 하지 않습니까. 히히히…. 그는 하여간 그 두 개가 즉 사람을 사람값에 가게 하는 보배가 아닙니까. 그런고로 보배에 제일 가는 구슬옥에 한 점을 더 박은 게 아니외니까….”

한 마디마다 허리가 부러지게 웃던 A는,

“그래서 금강산에 옥좌를 만들었습니다 그려…. 하하하.”

하며 또 웃었다.

“그러면 여인네는 김가가 없구만요?”

이번에는 H가 놀렸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눈만 멀뚱멀뚱 하며 앉았다가 별안간에,

“옳지! 옳지! 그래서 내 댁내는 안가로군…. 응! 히히히. 여편네가 관을 썼어…. 여인네가 관을 썼어…히히 히히히.”

잠꼬대하는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나서는 히히히 웃기를 두세 번이나 뇌었다.

“참 아씨는 어디 가셨나요?”

나는 ‘내 댁내가 안가라고’하는 그의 말에 문득 그의 처자의 소식을 물어 보려는 호기심이 나서 이같이 물었다.

“예? 못 보셨소? 여보, 여보, 영희 어머니! 영희 어머니!”

몸을 꼬고 엎드려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부르다가,

“또 나갔나!”

혼잣말처럼 하며 바로 앉더니,

“아마 저기 갔나보외다.”

하고 유곽을 가리켰다.

“또 난봉이 난 게로군…. 하하하, 큰일났소이다. 비끄러매 두지 않으면….”

A가 말을 가로채서 놀렸다.

“히히히, 저기가 본래 제 집이라오.”

“저긴 유곽이 아니오?”

H도 웃으며 물었다.

“여인네가 관을 썼으니까…. 하하하.”

이번에는 Y가 입을 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앉았다가,

“예, 그 안에 있어요…. 그 안에. 5년이나 나하고 사는 동안에도 역시 그 안에 있었어요. 히 히히 히히.”

“… 그 안에 그 안에!”

나는 아가 그의 처가 도주를 하였다는 소문도 있다고 하던 A의 말을 생각하며 속으로 뇌어 보았다.

“좀 불러오시구려.”

“인제 밤에 와요. 잘 때에….”

“그거 옳은 말이외다…. 잘 때밖에 쓸데없지요. 하하하.”

H가 농담을 붙이는 것을 나는 미안히 생각하였다.

“히히히. 그러나 너무 뜨거워서 죽을 지경이랍디다. 어제는 문지기에게 죽도록 단련을 받고 울며 왔기에 불을 피우고 침대에서 재워 보냈습니다…. 히히히.”

무슨 환상을 쫓듯이 먼산을 바라보며 누런 이를 내놓고 히히히 웃는 그이 얼굴은 원숭이같이 비열하게 보였다.

산등에서 점점 멀어 가던 햇발은 부지중 소리 없이 날아가고 유곽 이층에 마주 보이는 전등 불빛만 따뜻하게 비치었다.

홍소, 훤담, 조롱 속에서 급격히 피로를 느낀 그는 어슬어슬하여 오는 으슥한 산 밑을 헤매는 쌀쌀한 가을 저녁 바람과 음산하고 적막한 암흑이 검은 이빨을 악물고, 휙휙 한숨을 쉬며 덤벼들어 물고 흔드는 삼층 위에 썩은 밤송이 같은 뿌연 머리를 움켜쥐고 곁에 누가 있는 것도 잊은 듯이 기둥에 기대어 앉았다.

“인젠 가 볼까.”

하는 소리가 누구의 입에선가 힘없이 나왔다.

동서 친목회 회장…. 세계 평화론자…. 기이한 운명의 순난자…. 몽현의 세계에서 상상과 환영의 감주에 취한 성신의 총아 오욕육구, 칠난팔고에서 해탈하고 부세의 제연을 저버린 불타의 성도와,조소에 더러운 입술로 우리는 작별의 인사를 바꾸고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울타리 밑가지 나왔던 나는 다시 돌쳐서서 그에게로 향하였다. 이층에서 뛰어내려오는 그와 마주칠 때 그는 내 손에 위스키 병이 있는 것을 보고 히히 웃었다. 나는 Y의 집에서 남겨 가지고 나온 술병을 그의 손에 쥐어 준후 빨간 능금 두 개를 포켓에서 꺼내 주었다.

“이것 참 미안하외다.”

그는 만족한 듯이 웃으며 받아서 이층 벽에 기대어 가로 세운 병풍 곁에 늘어놓고 따라 나와 인사를 하였다.

가련한 동무를 이별하고 나온 나는 무겁고 울적한 기분에 잠기어서 입을 다물고 구두코를 내려다보며 무심히 걸었다. 역시 잠자코 앞서 가던 Y는 잠깐 멈칫하고 돌아다보며,

“X군 어때?”

“글쎄……”

“… 그러나 모자를 벗어 들고 공손히 강연을 듣고 섰는 군의 모양은 지금 생각을 해도 요절을 하겠어…. 하하하.”

“흐흥….”

나는 힘없이 웃었다.

저녁 가을 바람은 산듯산듯 목에 닿는 칼라 속을 핥고 달아났다. 일행이 삼거리에 와서 A와 헤어질 때는 이삼 간 떨어진 사람의 얼굴이 얼쑹얼쑹 보였다.

시시각각으로 솔솔 내려앉는 땅거미에 사인 황야에, 유곽에서 가늘고 길게 흘러나오는 샤미센 소리, 탁하고 넓게 퍼지는 장구소리는 혹은 급하게, 혹은 느리게 퍼지어서 정거장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우리의 발뒤꿈치를 어느 때까지 쫓아왔다.

컴컴하고 쓸쓸한 북망 밑 찬바람에 불리우며 사지를 오그리고 드러누운 삼층집 주인공은 저 장구소리를 천당의 왈츠로 듣는지, 지옥의 아비규환으로 깨닫는지, 나는 정거장 문에 들어설 때까지 흘금흘금 돌아다녀 보아야 오직 유곡의 요화 같은 유곽의 전등불이 암흑 가운데 반짝거릴 뿐이었다.

5

평양행 열차에 오를 때에는 일단 헤어졌던 A도 다시 일행과 합동되었다.

커단 트렁크를 무거운 듯이 두 손으로 떠받쳐서 선반에 얹고 나서 목이 막힐 듯한 한숨을 휘이 쉬며 앉는 A를 Y는 웃으며 건너다보고,

“인젠 영원인가?”

“응! 영원히. 하하하.”

A는 간단히 말을 끊고 호젓해하는 듯한 미소를 띄었다.

“그러나 평양이 세계의 끝일지도 모르지…. 핫하하.”

“하하하.”

A도 숙였던 고개를 쳐들며 힘없이 웃었다.

“왜 어디 가시나요?”

A와 마주 앉은 나는 물었다.

“글세요, 남으로 향할지 북으로 달릴지 모르겠소이다.”

A는 말을 맺고 머리를 차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 A군은 오늘 부친께 선언을 하고 영원히 나섰다는 게라요.”

Y가 설명을 하였다.

“하하하, 그것 부럽소이다 그려…. 영원히 나섰다는…. 그것이 부럽소이다.”

나는 이같이 한 마디 하고 A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들고 눈을 뜬 A는 바로 앉으며 빙긋 웃을 뿐이었다.

우리는 엽서를 꺼내 들고 서울에다가 편지를 썼다. 나는 P에게 대하여 이렇게 썼다.

“무엇이라고 썼으면 지금 나의 이 심정을 가장 천명히 형에게 전할 수 있을까! 큰 경이가 있은 뒤에는 큰 공표와 큰 침통과 큰 애수가 있다 할 지경이면 지금 나의 조자를 잃은 심장의 간헐적 고동은 반드시 그것이 아니면 아닐 것이오. 인생의 진실된 일면을 추켜들고 거침없이 육박하여 올 내 전령을 에워싸는 것은 경악의 전율이요, 그리고 한없는 고민이요, 샘솟는 연민의 눈물이요, 가슴이 저린 애수요…. 그 다음에 남은 것은 미치게 기쁜 통쾌요.

… 3원 50전으로 삼층집을 짓고 유유자적하는 실신자를- 아니오, 아니오, 자유민을 이 눈앞에 놓고 볼제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소. 현대의 모든 병적 다크사이드를 기름 가마에 몰아 놓고 전축하여 최후에 가마 밑에 졸아붙은 오뇌의 환약이 바지직바지직 타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욕구를 홀로 구현한 승리자 같기도 하여 보입디다…. 나는 암만 하여도 남의 일같이 생각할 수 없습디다.”

나는 엽서 한 장에다가 깨알같이 써서 Y에게 보라고 주고, 다른 엽서 한 장에 다시 계속하였다.

“P군! 지금 아무리 자세히 쓴다 하기로 충분한 설명은 못 하겠기로 후일에 맡기지마는 그러나 이것만은 추측하여 주시오….지금 나는 얼마나 소리 없는 눈물을 정거한 화차의 연통같이 가다가다 뛰노는 심장 밑으로 흘리며 앉았는가를…. 지금 나는 울고 있소. 심장을 압축할 만한 엄숙하고 경건한 사실에 하도 놀라고 슬퍼서….. 지금 나는 울고 있소. 모든 세포 세포가 환희와 오뇌 사이에서 뛰놀다가 기절할 만큼 기뻐서….”

6

북국의 철인, 남포의 광인 김창억은 아직 남포 해안에 증기선의 검은 구름이 보이지 않던 삼십여 년 전에 당시 굴지하는 객주 김건화의 집 안방에서 고고의 첫소리를 울리었다. 그의 부친은 소시부터 몸에 녹이 슨 주색잡기를 숨이 넘어갈 때까지 놓지를 못한 서도에 소문난 외도객, 남편보다 네 살이나 위인 모친은 그가 십사 세 되던 해에 죽은 누이와 단 남매를 생산한 후에는 남에게 말 못 할 수심과 지병으로 일생을 마친 박복한 여성이었다.

이러한 속에서 자라난 그는 잔열포류의 약질일망정 칠팔 세부터 신동이라 들을이만큼 영리하였다. 영업과 화류 이외에는 가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의 부친도 의외에 자식이 총명한 것은 기뻐할 줄 알았었다.

더구나 자기의 무식함을 한탄하리만큼 자식의 교육은 투전장 다음 쯤으로 생각하였다. 그 덕에 창억이도 남만큼 한학을 마친 후 십육 세 되던 해에 경성에 올라가서  한성 고등 사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삼년급 되던 해 봄에 부친이 장중풍으로 졸사하기 때문에 유학을 단념하고 내려오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 때 숙부의 손으로 재산 정리를 하고 보니까 남은 것이라고는 몇 두락의 전답하고 들어 있는 집 한 채뿐이었다. 유산이 있어도 선고의 유업을 계속할 수 없는 창억은 연래의 지병으로 나날이 수척하여 가는 모친과 일년 열두 달 말 한 마디 건네 보지 않는 가속을 데리고 절망에 싸여 쓸쓸한 큰 집 속에 들엎드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친도 그 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였다. 전 생명의 중심으로 믿고 살아가려던 모친을 잃은 그에게는 아직 어린 생각에도 자살 이외에는 아무 희망도 없었다.

백부의 지휘대로 집을 팔고 줄여 간 뒤로는 조석 이외에 자기 아내와 대면도 않고 종일 서재에 들엎드렸었다. 조석 상식에 어린 부부가 대성통곡을 하는 것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으나 그 설움은 각각 의미가 달랐다.

그것이 창억으로 하여금 더욱 불쾌하게 하였다…. 이 세상에는 자기와 같은 설움을 가지고 울어 줄 사람은 없구나! 이런 생각이 날 때마다 5년 전에 십오 세를 일기로 하고 간 누이 생각이 새삼스럽게 간절한 동시에 자기 처가 상식마다 따라 우는 것이 미워서 혼자 지내겠다고까지 한 일이 있다…. 독서와 애곡…. 이것이 3년 전의 그의 한결 같은 일과이었다.

그러나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던 해에 소학교가 비로소 설시되어 유지자의 강청으로 교편을 들게 된 뒤로부터는 다소 위안도 얻고 기력도 회복되었으며 가속에 대한 정의도 좀 나아졌다. 그러나 동시에 주연의 맛을 알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의사의 주의로 반주를 얼굴을 찌푸려 가며 먹던 사람이 점점 양이 늘어갈 뿐 아니라, 학교 동료와 추축이 잦아 갈수록 자기 부친의 청년 시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처는 내심으로 도리어 환영하였다.

그 이듬해에 식구가 하나 더 는 뒤부터는 가정다운 기분도 들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책과 눈물이 인제는 책과 술잔으로 변하였다. 그 동시에 그의 책상 위에는 신구약전서 대신에 동경 어떠한 대학의 정경과 강의록이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기이한 운명은 창억의 일신을 용서치는 않았다. 처참한 검은 그림자는 어느 때까지 쫓아다니며 약한 그에게 휴식을 주지 않았다.

자기가 가르치던 이년생이 졸업하려던 해에 그의 아내는 겨우 젖떨어질 만하게 된 것을 두고 시부모의 뒤를 따라갔다. 부모를 잃었을 때 같지는 않았으나 자기 신세에 대한 비탄은 한층 더하였다. 어미 없는 계집 자식을 끼고 어쩔 줄 몰라 방황하였다. 친척들은 재취를 얻어 맡기려고 무수히 권하였으나 종내 듣지 않았다. 오직 술과 방랑만이 자기의 생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마침내 서재에서 뛰어나왔다…. 학교의 졸업식을 마친 후 그는 표연히 유락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멀리는 못 갔다. 반 년쯤 되어 훌쩍 돌아와서 못 알아볼 만큼 초췌한 몸을 역시 서재에 던졌다. 그리하여 수삭쯤 지나 건강이 다시 회복된 후 권하는 대로 다시 가정을 이루었다. 이번에는 나이도 자기보다 어리거니와 금실도 좋았다.

그러나 애처의 강렬한 사랑은 힘에 겨워서 충분한 만족을 줄 수가 없었다. 혈색 좋은 큼직하고 둥근 상에서 디굴디굴 구는 쌍꺼풀 눈썹 밑의 안광은 곱고 귀여우면서도 부시기도 하며 밉기도 하며 무서워서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였다.

이 같은 중에 재미있는 유쾌한 5,6년 간은 무사히 지냈다. 소학교는 제 10회 창립 기념식을 거행하고 그는 10년 근속 축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운명은 역시 그의 호운을 시기하였다. 내월이면 명예로운 축하를  받게 되는 이 때에 그는 불의의 사건으로 철창에 매달리어 신음치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그의 일생을 통하여 노려보며 앉았는 비운은 그가 사 개월만에 무죄 방면되어 사바에 발을 들여 놓을 때까지 하품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사 개월 간의 옥중 생활은 잔약한 그의 신경을 바늘 끝같이 예민하게 하였다. 그는 파리하고 하얗게 센 얼굴을 들고 감옥 지붕의 이슬이 아직 녹지 않은 새벽 아침에 옥문을 나섰다. 차입하던 집으로 찾아오리라고 생각하였던 자기 처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60이 가까운 백부만 왔다.

출옥하기 일 삭 전까지는 일이 있어도 하루가 멀다고 매일 면회하러 오던 아내가 근 일 개월 동안이나 발을 끊은 고로 의심이 없지 않았으나 가끔 백부가 올 때마다 영희가 앓아서 몸을 빼쳐 나지 못한다기로 염려와 의혹속에서도 다소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출옥하던 전날 면회하러 오던 인편에 갑갑증이 나서 내일은 꼭 맞으러 와 달라고 한 것이라서 뜻밖에 보이지 않는 고로 더욱 의심이 날 뿐 아니라 거의 낙심이 되었다.

백부에게 물어 볼까 하다가  이것이 자기의 신경과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나서 갑갑한 마음을 참고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도중에서 일부러 길을 돌아 백부의 집으로 가자는 데에도 의심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잠자코 따라갔다.

대문에 발을 들여놓다,

“아, 아바지!”

하며 영희가 앞선 백부와 바꾸어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 탈이 났다더니 언제 일어났니?”

영희의 어깨에 손을 걸며 눈이 휘둥글해서 숨찬 듯이 물었다.

“에? 누가 탈은 무슨 탈이 났댔나요?”

하고 영희는 멈칫하며 둘러보았다.

“어머니는?”

그는 자기가 추측하며 무서워하던 사실이 점점 명백하여 오는 것을 깨달으며 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어머니 어디 갔어….”

그에게 대한 이 한 마디가 억만 진리보다 더 명백하였다. 그 동시에 자기의 귀가 의심쩍었다.

온 식구가 다 뛰어나오며 웃음 속에서 맞으나 그는 얼빠진 사람처럼 인사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맥없이 얼굴이 새파래서 뜰 한가운데에 섰다가,

“인제 가 보지요. 영희야!”

하며 그대로 뛰쳐나오려 했다.

뜰 아래에 여기저기 섰던 사람들은 그가 얼빠진 사람처럼 뚱그런 눈만 무섭게 뜨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보며 주저주저 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입을 벌리지 못하고 피차에 물끄러미 눈치만 보다가,

“아, 아침이나 먹고 천천히….”

숙모가 끌어당기듯이 만류하였다.

“아니오, 왜 영희 어미는…. 어디 갔어요?”

그는 입이 뻣뻣하여 말을 어우를 수 없는 것처럼 떠듬떠듬 겨우 입을 열었다.

“으응…. 일전에 평양에…. 어쨌든 올라오려무나.”

평양이라는 것은 처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숙부가 말을 더듬는 것이 위선 이상히 보였다. 더구나 ‘어쨌든’이란 말은 웬 소리인가 평시 같으면 귓가로 들을 말도 일일이 유심히 들리었다.

“흐흥…. 평양! 흐흥…. 평양!”

실성한 사람처럼 흐흥흐흥 코웃음을 치며 평양을 뇌고 섰는 그의 눈앞에는 금년 정초에 평양 정거장 문 밖 우체통 뒤에서 누구하고인지 수군거리다가 휙 돌쳐서 캄캄한 밤길에 사라져 버리던 양복장이의 뒷모양이 환영같이 떠올랐다. 그는 차차 눈이 캄캄하여 오고 귀가 멀어 갔다…. 절망의 깊은 연못은 점점 깊고 가깝게 패어들어갔다.

그는 빈 집에라도 가서 형편도 보고 혼자 조용히 드러누워서 정신을 가다듬을까 하였으나 현기가 나서 금시로 졸도할 듯하여 권하는 대로 올라가서 안방으로 들어가 픽 쓰러졌다.

피로, 앙분, 분노, 낙심, 비탄, 미가지의 운명에 대한 공포, 불안…… 인간의 고통이란 고통은 노도와 같이 일시에 치밀어와서 껍질만 남은 그를 삶아 죽이려는 듯이 덤벼들었다. 옴폭 패인 눈을 감고, 벽을 향하여 드러누운 그의 조막만한 얼굴은 납으로 만든 데드마스크와 같았다. 죽은 듯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으나 격렬한 심장의 동계와 가다가다 부르르 떠는 근육의 마비는 위에 덮어 준 주의 위로도 분명히 보였다.

한 시간쯤 되어 깨었다. 잔 듯 만 듯한 불쾌한 기분으로 일어나 밥상을 받았다. 무엇이 입에 들어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속에 들어 앉았을 때에는 나가면 이것도 먹어 보리라 저것도 하여 보리라고 벼르고 별렀으나 이렇게 되고 보니까 차라리 삼사 년 후에 나오는 것이 좋았겠다고 생각하였다.

밥술을 뜨자 마자 그는 허둥지둥 뛰어나왔다.

“아버지!”

하며 쫓아 나오는 영희를 험상스러운 눈으로 노려보며 들어가라고 턱짓을 하고 나섰다. 머리를 비슷이 숙이고 동구까지 기어나오다가 돌쳐설 때 숙부의 손에 매달려 나오는 딸을 힐끗 보고 별안간 눈물이 앞을 가리며 낳은 어미 없이 길러 낸 딸자식이 불쌍히 생각되어 금시로 돌쳐가서 손을 잡고 오고 싶은 생각이 불쑥 나는 것을 억제하고 ‘야아 야아’하며 부르는 백부의 소리도 못 들은 체라고 앞서서 왔다.

… 범죄자의 누명을 쓰고 처자까지 잃은 이내 신세일망정 십여 년이나 정을 들이고 살던 사 개월 전의 내 집조차 나를 배반하고 고리에 쇠를 비스듬히 차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그대로 매달려서 울고 싶었다.

백부는 숨이 찬 듯이 씨근씨근하며 쫓아와서,

“열쇠가 예 있다.”

하며 자기 손으로 열고 들어갔으나 그는 어느 때까지 우두커니 섰었다.

일 개월 이상이나 손이 가지 않은 마당은 이삿짐을 나른 뒤 모양으로 새끼 부스러기, 종잇조각 들이 즐비한 사이에 초하의 잡초가 수채 앞이며 담밑에 푸릇푸릇하였다. 그의 숙부도 역시 그럴 줄이야 몰랐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한 번 휙 돌아보고 나서 신을 신은 채 뒷마루에 올라섰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퇴 위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여기저기 산국화 송이같이 박혀 있다. 뒤로 쫓아들어온 그는 뜰 한 가운데에 서서 덧문을 첩첩이 닫은 대청을 멀거니 바라보고 섰다가 자기 서재로 쓰던 아랫방으로 들어가서 먼지 앉든 요 위에 엎드러지듯이 벌떡 드러누웠다.

“할아버지… 여기…. 농이!”

안방으로 들어온 영희는 깜짝 놀라며 큰 소리를 쳤다.

“옛?”

하며 어름어름하던 백부는 서창 덧문을 열어젖히고 안방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농장이 없어진 것을 보고 혀를 두세 번 차고 나서,

“망할 년의 새끼…. 어느 틈에 집어 갔노….”

하며 밖으로 나왔다.

아닌게아니라 창억이가 첫 장가들 때 서울서 사다가 17,8년 동안이나 놓아 두었던 화류농장 두 짝이 없어졌다.

백부가 간 뒤에 일꾼 아이와 계집애년이 와서 대강대강 소제를 한 후 저녁밥은 먹기 싫다는 것을 건네왔다. 그 이튿날도 꼼짝 아니 하고 들어앉았었다.

백부의 주선으로 소년 과부로 50이나 넘은 고모가 안방을 점령하기까지 5,6일 동안은 한 발짝도 방문밖에 나오지 않았다. 백부가 보제를 복용하라고 돈푼 든 약첩을 지어다가 조석으로 달여다 놓아도 끝끝내 손도 대지 않았다. 하루 이삼 차씩 백부가 동정을 살피러 와서 유리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앉았다가도 별안간 돌아누워서  자는 체도 하고 우릿간에든 곰 모양으로 빈 방 안을 빙빙 돌아다니다가 누가 들여다보는 기척만 있으면 책상을 향하여 앉기도 하였다. 아침에 세수할 때와 간혹 변소 출입 외에는 더운줄도 모르는지 창문을 꼭꼭 닫고 큰기침 소리 한 번 없이 들어앉았었다.

그가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 그는 아무것도 하는 거시 없었다. 가다가다 몇 해 동안 손도 대어 보지 않던 성경책을 꺼내 놓고 들여다보기도 하였으나 결코 한 페이지를 계속하여 보는 법이 없었다.

이러한 모양으로 일 삭쯤 지내더니 매일 아침에 한 번씩 세수하러 나오던 것도 폐하고 방으로 갖다 주는 조석만 먹으면 자는지 깨어서 누웠는지 하여간 목침을 들어 드러눕기로만 위주하였다.

백부는 병세가 더 위중하여 그렇다고 약을 먹이지 못하여 달래도 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약은 기어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하루 삼사 차씩은 궐하지 않고 와서 방문도 열어 보고 위무하듯이 말도 붙여 보나 벙어리처럼 가만히 돌아 앉았다가 어서 기 달라고 걸인이나 쫓아내듯이 언제든지 창문을 후닥닥 닫았다.

하루는 전과 같이 저녁때쯤 되어 가만가만 들어와서 유리 구멍으로 들여다보려니까 방 한가운데에 눈을 감고 드러누었다가 무엇에 놀란 듯이 깎아 세운 기둥처럼 눈을 부릅뜨고 벌떡 일어나더니 창에다 대고,

“이 놈의 새끼! 내 댁내를 차가고 인제는 나까지 죽이러 왔니?”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버럭 질렀으나 감히 창문을 열지 못하고 얼어 붙은 장승같이 섰다. 백부는 기가 막혀서 미닫이를 열며,

“이거 와 이러니.”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문만 열면 곧 때려죽이겠다는 듯이 딱 버티고 섰던 사람이 금시로 껄껄 웃으며,

“나는… 누구라고! 삼촌 올라오시소 그래.”

하고 이번에는 안방에다 대고,

“여보, 영희 오마니! 삼촌이 왔는데 술좀 받아오시소그래.”

하고 나서 경련적으로 켕기어 네 귀가 나는 입을 벌리고 히히히 웃었다.

그의 백부는 한참 쳐다보다가,

“야, 어서 자거라, 잠이 아직 깨이지 못한 게로구나. 술은 이따 먹지, 어서어서.”

“그런데, 여보소 삼촌! 영희 오마니는 지금 어데 갔소? 술 받으러? 히히히…. 아하, 어젯밤에도 왔어! 그 사진을 살라 달라고…. 그…어디 있던가?”

하며 고개를 쳐들고 방안을 휙 둘러보다가 무슨 생각이 났던지 별안간에 책상 앞으로 가서 꿇어앉으며 무엇인지 부리나케 찾는다. 노인은 뒷모양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방문을 굳게 닫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 방에서는 히히히 웃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손에는 두 조각이 난 사진이 있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어느 틈에 방을 뛰어나와서 부엌을 들여다보고 요사이는 왜 세숫물도 아니 주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며 대야를 내밀고 물을 청하였다. 밥솥에 불을 때고 앉았던 고모가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까 근 반 년이나 면도를 아니 한 수염에는 먼지가 뿌옇게 앉았고 솟은 듯한 붉은 눈찌에는 이상한 영채가 돌면서도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고모는 무서운 증이 나서 아니 나오는 웃음을 띄고 달래듯이 온유한 목소리로,

예예. 잘못하였쇠다. 처음 시집살이라 거행이 늦었쇠다. 히히히….”

웃으며 물을 퍼 주었다.

아침상을 차려다 디밀며 차차 좋아지는 듯한 신기를 위로삼아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니까,

“영희 오마니나 뭐든지 해 주시오.”

하며 의논할 것이 있으니 들어오라고 간청을 하였다. 고모는 주저주저하다가 오늘은 맑은 정신이 난 듯하여 안심하고 방을 치워줄 겸 걸레를 집어 들고 들어갔다. 책상 위와 방구석을 엎드려서훔치며,

“무슨 의논이야?”

하며 말을 꺼냈다.

“… 어젯밤에 영희 오마니가 왔더랬는데, 오늘 낮에는 아주 짐을 지워가지고 오겠다고….”

“무어? 지금은 어드메 있기에?”

고모는 역시 제 정신이 아니 들어서 저러나보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하여 눈이 휘둥그래지며 걸레 잡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 지금? 히히히, 연옥에서 매일 단련을 받는데 도망하여 올 처이니 전죄를 용서하고 집에 두어 달라고 합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본 것이 생각나서 연옥이란 말을 썼으나 고모는 물론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다만 옥이라는 말에 대개 지옥이라는 말인줄 짐작하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냉면이나 한 그릇 얻어다 주지.”

하고 나오다가 아침에 세수하던 것을 생각하고 혼자 빙긋 웃었다.

날이 더워갈수록 그의 병세는 나날이 더하여 갔다. 8월 중순이 지나 심한 더위가 다 가고 뜰에 백일홍이 누릇누릇하여감을 따라 그에게는 없던 증이 또 생겼다. 축대 밑에 나오려던 풀이 폭열에 못 이기어서 비틀어져 버리던 6,7월 삼복에는 겨우 동창으로 바람을 들이면서 불같이 끓는 방 속에 문을 봉하고 있던 사람이 무슨 생각이 났던지 매일 아침만 먹으면 의관도 아니 하고 뛰어나가기를 시작하였다.

무슨 짓을 하며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아무도 몰랐다. 대개는 어슬어슬하여 돌아오거나 혹은 자정이 넘어서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별로 곤한 빛도 없었다. 안방에서 혹 변소에 가는 길에 들여다 보면 그믐 달빛이 건넌방 지붕 끝에서 꼬리를 감추려 할 때에도 빈 방 속에 생불처럼 가만히 앉았었다.

너무 심하여서 삼촌이 며칠을 두고 찾으러 다녀 보아도 종적을 알 수 없었다. 집에서 나갈 때에 누가 뒤를 밟으려고 쫓아 나가는 기색만 있어도 도로 들어와서 어떻게 하여서든지 틈을 타서 몰래 빠져 달아나갔다. 그러나 그는 별로 다른 데를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기 집에서 동북으로 향하여 일 마장쯤 떨어져 있는 유곽 뒤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뫼 위에 종일 드러누웠을 뿐이었다.

무슨 까닭에 그 곳이 좋은지는 자기도 몰랐다. 하여간 수풀 위에서 디굴디굴 구는 것이 자기 방 속보다 상쾌하다고 생각하였다. 아침에 햇살이 두텁지 않은 동안에 잠깐 드러누웠다가 오정 전후의 폭양에는 해안가로 방황한 후 다시 돌아와서 석양판에 가만히 누웠는 것이 얼마나 재미스러웠는지 몰랐다.

그것도 처음에는 동리 아이들이 덤벼들어서 괴로워 못 견디었으나 일 주, 이 주, 지나갈수록 자기의 신경을 침략하는 자도 점점 없어졌다. 그러나 김모가 미쳤다는 소문은 전시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가 매일 어디 가 있다는 것은 삼촌의 귀에 제일 먼저 들어 왔다.

그 후부터는 매일 감시를 엄중하게 하여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이삼 일 동안을 근신한 태도로 칩복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십오일 동안 신용을 보여서 감시가 좀 누그러져 가는 기미를 챈 그는 또다시 방문 밖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땅으로 꺼져 들어간 듯이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었다.

7

반 달 동안을 두고 찾다 못 하여 경찰서에 수색원을 제출한 지 사흘 되던 날 밤중에 연통 속으로 기어나온 것처럼 대가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탈을 하고 훌쩍 돌아와서 불문곡직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코를 골며 잤다. 이튿날 아침에는 조반을 걸신들린 사람처럼 그릇마다 핥듯이 하여 먹고 삼촌이 건너오기 전에 뛰어나갔다.

삼사 시간 뒤에 쫓아간 그의 백부는 유정 유곽 산 뒤에서 용히 그을 발견하였다.

그가 처음 감시의 비상선을 끊고 나올 때는 맑은 정신이 들어서 그리하였는지, 하여간 자기의 고향을 영원히 이별할 작정으로 나섰었다, 위선 시가를 떠나 촌리로 나와서 별당 이전의 상지를 복하려고 이 산 저 산으로 헤매었다. 가가호호로 돌아다니며 연명을 하여 가며 5,6일 만에 평양 부근까지 갔었다.

그러나 평양이 가까워 오는 데에 정신이 난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포로 향하였다. 그 중에 다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지는 않았으나 무엇보다도 불만족한 것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이엇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기 서재로 자기를 위하여 영원히 안도하라고 하나님이 택정하신 바 유정 뒷산 밑으로 기어든 것이었다.

인간에게 허락된 이외의 감각을 하나 더 가지고 인간의 침입을 허락지 않는 우수미려한 신비의 세계에 들어갈 초대장을 가진 하나님의 총아 김창억은 침식 이외에는 인간계와 모든 연락을 끊고 매일 같은 꿈을 반복하여 대지 위에 자유롭게 드러누워서 무애무변한 창공을 쳐다보며 대자연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은총 많음을 홀로 찬양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가 달포나 되어 시월 하순이 가까워 초상이 누른 풀잎 끝에 엷게 맺을 때가 되었다.

하루는 어두워서야 들어오리라고 생각한 그가 의외에 점심때도 채 아니 되어서 꼭 닫은 중문을 소리 없이 열고 자취를 감추며 돌아와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고모는 도둑이나 아닌가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고 문 틈으로 지키고 앉았으려니까 한식경이나 무엇인지 부스럭부스럭하더니 금침인 듯한 보따리를 들고 나온다. 가슴이 덜렁하던 고모는 문을 박차며 내다보고,

“그건 어디로 가져가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도망꾼처럼 한숨에 뛰어나려던 그는 보따리를 진채 어색한 듯이 히히히 웃으면서,

“새집 들래…. 히히히, 영희 어머니를 데려오려고 저기 한 채 지었어….”

또 히히히 웃고 휙 돌아서 나갔다. 고모는 삼촌집에 곧 기별을 하려도 마침 아이가 없어서 걱정만 하고 앉았었다. 조금 있다가 또 발소리가 살금살금 난다. 이번에도 안방으로 향하여 어정어정 들어오더니 부엌칸으로 들어가서 시렁 위에 얹어 넣은 병풍을 끌어 내려다가 아랫방 앞에 놓고 퇴로 올라서서,

“아지먼네, 그 농 좀 갖다 놓게 좀 주시소고래.”

하고 성큼 뛰어들어와서 윗간에 놓았던 붉은 농짝을 번쩍 들고 나갔다. 다행히 영희의 계모가 갈 때에 그의 의복이며 빨래들을 모아서 농장 속에 넣어 두었기 때문에 고모는 걱정을 하면서도 안심하였다. 낙지 이래로 이때껏 비 한 번 들어 보지 못하던 그가 그 무거운 농작에다가 병풍을 껴서 새끼로 비끄러매어 가지고 나가는 것을 방문에 기대어 보고 섰던 고모는 입을 딱 벌리고 놀랐다.

기지 이전에 실패한 그는 유정에 돌아와서 일이 주간이나 언덕에 드러누워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다. 답답한 방을 면하려면 위선 여기다가 집을 한 채 지어야 하는데 단층으로는 좁기도 하거니와 제일 바다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 그러면 이층? 삼층만 하면 예서도 보이겠지?”

하고 일어나서 발돋움을 하고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인가에 가리워서 사오 정이나 상거가 있는 해면이 보일 까닭이 없다.

“삼층이면 그래도 내 키의 삼사 배나 될 터이니까…. 되겠지.”

하며 곁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들고 차차 햇발이 멀어가는 산비탈에 앉아서 건축의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누렇게 된 잔디 위에 정처없이 이리저리 줄을 쓱쓱 그으면서 가다가다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해가 저물어 가는 것도 모르고 앉았었다.

그 날 밤에 돌아와서는 책궤 속에서 학생 시대에 쓰던 때묻은 양척과 사기가 물러난 삼각자를 꺼내 가지고 동이 트도록 책상머리에 앉았었다.

도안을 얻은 그는 동이 트기도 전에 산으로 달아났다. 위선 기지의 검분을 마친 후 그는 그 길로 돌을 주워들이기 시작하였다.

반나절쯤 걸리어서 두세 삼태기나 모아놓은 후, 허기진 줄도 모르고 제일 가까운 유곽 속으로 헤매이며 새기 오라가, 멍석 조각이며 장작개비, 비루궤짝, 깨진 사기그릇 나부랑이…. 손에 걸리는 대로 모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돌아다니는 동안에 유곽 속에서 먹다 남은 청요리 부스러기를 좀 얻어먹었으나 해질 무렵쯤 되어서는 맥이 풀려서 하는 수 없이 엉기어 들어와 저녁을 먹고 곧 자빠졌다.

그 이튿날은 건축장에 나가는 길에 헛간에 들어가서 괭이를 몰래 집어 숨겨 가지고 도망하여 나왔다. 오전에 위선 한 칸통쯤 터를 닦아서 다져 놓고 산을 내려와 물을 얻어다가 흙을 이겨 놓고 오후부터는 담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모통이에서부터 쌓아 나와 기역자로 고불릴 때에 비로소 기둥이 없는 데에 생각이 나서 일을 중지하고 산등에 올라 앉아서 이궁리저궁리하여 보았다…. 자기 집에는 물론 없지마는 삼촌집에 가면 서가래 같은 것이라도 서너 개 있을 터이나 꺼낼 계책이 없었다.

지금의 그로서 무엇보다도 제일 기외하는 것은 자기의 계획이 완성되기 전에 가족의 눈에 띄거나 탄로되는 것인 동시에, 이것을 계획하는 것 더욱이 이 계획을 절대 비밀리에 완성하는 것이 유일의 재미요 자랑거리이며 또한 생명이었다.

만일 이 때에 누가 와서 ‘너의 계획은 이러저러하고 너의 포부는 약차 약차히 고대하나 가엾은 일이지만 그것은 한 꿈에 불과하다.’고 설파하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는 경악 실망한 나머지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였을지도 모를 것이다. ‘….어떻게 하였으면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동안에 하루 바삐 이 신식 삼층 양옥을 지어서 세상 사람들을 놀래 보일까!’ 침식을 잊고 주소로 노심초사하는 것이 오직 이것이었다.

그는 삼촌집의 재목을 가져올 궁리를 하였다. ‘밤에나 새벽에 가서 집어 와? 그것도 아니 될 것이다…… 그러면 어느 재목상에나 가서? 응 응 옳지 옳지!’하며 그는 흙 묻은 손을 비벼 털며 뛰어내려와서 정거장으로 향하여 달아나왔다. 그는 ‘재목상에나!’라는 색각이 날 제 십여 년 전에 자기가 가르치던 A라는 청년이 재목상을 경영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뛰어나온 것이었다.

삼거리로 갈리는 데 와서 잠깐 멈칫하다가 서으로 고불뜨려서 또다시 뛰었다. <Y 재목 상회>라는 기단 간판이 달린 목책으로 돌라막은 문전에 다다라 우뚝 서며 안을 들여다보고 멈칫거리다가 문안으로 썩 들어섰다. 그는 무엇이나 도둑질하러 온 사람처럼 황황히 사방을 돌아보다가 사무실에서 누가 내다보는 것을 눈치채고 곧 그리로 향하였다.

“재목 있소?”

발을 들여 놓으며 한 마디 부르짖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오…. 재목이야 있지요. 하하하….”

테이블 앞에 앉아서 사무원들과 잡담을 하고 있던 주인은 바로 앉아서 그를 마주 쳐다보며 웃었다.

그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사무원들을 차례차례로 쳐다 보다가 마치 취한이나 광인이 스스러운 사람과 대할 때에 특별한 주의와 긴장을 가지는 거와 같이 뿌연 눈을 똑바로 뜨고 나서 한 마디 한 마디씩 애를 써 분명한 어조로,

“아니, 좀 자질구레한 기둥 있거든 몇 개 주시소고래. 지금 집을 짓다가…..”

“그건 해 무엇하시랴오? 그러나 돈을 가져오셔야지요….. 하하하.”

사소한 대금을 관계하는 것은 아니나 그가 광증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주인은 그대로 내주는 것이 어떨까 하여 물어 보았다.

“응응! 옳지! 돈이 있어야지. 응응! 돈이 있어야지….”

돈이란 말에 비로소 깨달은 듯이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멀거니 섰다가 아무 말도 없이 도로 뛰어나갔다. 처음부터 서로 눈짓을 하며 빙긋빙긋 웃고 앉았던 사무원들은 참았던 웃음을 왓하하하하며 웃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유리창을 흘겨다보며 급히 달아나왔다.

그 길로 자기 집으로 뛰어갔다. 방에 쑥 들어서면서 흙이 말라소 뒤발을 한 손으로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뒤적거리며 한참 찾더니 돈지갑을 들고서 선 채 열어보았다. 속에는 1원짜리 지폐가 석장하고 은전 백동전 합하여 90여 전쯤 들어 있었다……옥중에서 차입하여 쓰고 남은 것이었다. 그는 혼자 히이 웃으며, 지갑을 단단히 닫아서 바지춤에다 넣고 다시뜰로 내려 섰다. 대문을 막 나서렬 때 삼촌과 마주쳤다. 그는 마치 못된 장난을 하다가 어른에게 들킨 어린아이처럼 깜짝 놀라며 꽁무니를 슬슬 빼며 급히 방안으로 뛰어들어가서 자는 체하고 드러누워 버렸다. 그 날 밤에는 종내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위선 재목상을 찾아갔다.

마침 나와 앉았던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들어와서 훔척훔척하다가 3원 50전을 꺼내 놓고 ‘얼마든지 좀 주시고래’ 하고 벙벙히 섰는 그의 태도를 한참 쳐다보다가,

“얼마나 드리리까?”

하며 웃었다.

“기둥 여섯하고….”

“기둥 여섯만 하여도 본전도 안 됩니다.”

주인은 하하 웃으며 그의 말을 자르고 사무원을 돌아다 보고 무엇이라고 하였다. 그는 사무원을 따라나가서 서까래만한 기둥 여섯 개와 널빤지 두 개를 얻어서 짊어지고 나섰다. 재목을 얻은 그는 생기가 더 나서 위선 네귀에 기둥을 세우고 두 편만은 중간에다 마주 대하여 두 개를 세운 뒤에 삼등분하여 새끼로 두 층을 돌라 매어놓고 담을 쌓기 시작하였다. 담쌓기는 쉬우나 돌멩이 모아 들이기에 날짜가 많이 걸렸다.

약 삼 주간이나 되어 동편으로 드나들 구멍을 터 놓고는 사방으로 삼사 척의 벽을 쌓았다. 위선 하층은 되었는 고로 널빤지를 절반하여 한편에 기대어서 걸쳐 놓고, 나머지 길이를 이등분하여 어긋매어서 삼층을 꾸렸다. 그 다음에는 이층만 사면에 멍석 조각을 둘러 막고 삼층은 그대로 두었다. 이것도 물론 그의 설계에 한 조목 든 것이었다. 그의 이상으로 말하면 지붕까지라도 없어야 할 것이지만 우로를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역시 멍석을 이어서 덮었다.

이같이 하여 이렁저렁 일 개월 이상이나 걸린 역사는 대강대강 끝이 나서 위선 손을 떼던 날 석양에 그는 삼층 위에 올라 앉아서 저물어가는 산 경치를 내다보고 혼자 기꺼움을 이기지 못하였다. 인생의 모든 행복이 일시에 모여든 것 같았다. 금시에라도 이사를 하려다가 집에 들어가면 또 잡히어서 나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어둡기까지 그대로 드러누웠었다. 드러누워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위선 세계 평화 유지 사업으로 회를 하나 조직하여야 할 터인데….”

‘회명은 무어라고 할까? 국제 연맹이란 것은 있으니까 국제 평화 협회? 세계 평화회? 그것도 아니 되었어. 동서양이 제일에 친목하여야 할 것인 즉 <동서 친목회>라 하자! 옳지! 동서 친목회…… 되었어.”

그 다음에 그는 삼층 양옥을 어떻게 하면 거처에 편리하게 방세를 정할까 생각하였다. 위선 급한 것은 응접실이다.

그 다음에는 사무실, 침실, 식당, 서재….. 차례차례로 서양 사람 집 본새를 생각하여가며 속으로 정하여 놓고 어슬어슬한 때에 뛰어내려왔다. 일단 집으로 향하였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돌쳐서서 유곽으로 들어갔다. 헌등 아래로 슬금슬금 기어가듯 하며 이집 저집 기웃기웃하다가 어떤 상점 앞에 와서 서더니 저고리 고름 끝에 매인 매듭을 힘을 들여서 풀고 섰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 드는 것도 모르는 것같이 시치미를 데고 풀더니 은전 네 잎을 꺼내서 던지고 일본주 이 홉 병을 받았다. 낙성연을 베풀려는 작정이었다.

공복에 들어간 두 홉 술의 힘은 강렬하였다. 우정의 사람 자취가 그칠 때가지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동서회 친목 회장이 너희들을 감독하려고 내일이면 또 나오신다고 도지개를 틀며 앉았는 여회원들을 웃기며 비틀거리고 돌아다닌 것도 그 날 밤이었다.

8

세간을 나르노라고 중문 대문을 훨씬 열어젖혀 놓은 것을 지치려고 뒤를 쫓아 나간 고모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그의 가는 방향을 한참 건너다보다가 긴 한숨을 쉬고 들어와서 큰집에 간 영희만 기다리고 앉았으려니까 15분쯤 되어 삐이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또 들어와서 이번에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한참 동안 훔척훔척 하다가 석유통으로 만든 화덕 위의 냄비를 들고 나왔다.

그 속에는 사기그릇이며 수저 나부랑이를 손에 잡히는 대로 듬뿍 넣었다. 그는 안에서 무엇이라고 소리나 칠까 보아서 연상 힐끗힐끗 돌아다보며 뺑소니를 쳐서 나왔다…. 십 수년 동안 기거하던 자기 집을 영원히 이별하였다.

그 날 석양에 고모는 영희를 데리고 동리 사람이 가르쳐 주는 대로 그의 신가정을 찾아갔다. 고모에게 대하여는 가장 불행하고 비통한 집안이었다. 엿과 성냥 대신에 저녁밥을 싸 가지고 갔었다. 물론 가자고 하여야 다시 집에 돌아올 그가 아니었다.

영희가 울면서 가자고 하니까 그는 무슨 정신이 났던지 측은하여 하는 듯한 슬픈 안색으로 목소리를 떨며,

“어서 가거라. 어서 가거라…. 아아 춥겠다. 눈이 저렇게 왔는데 어서 가거라.”

혼잣말처럼 꼭 한 마디 하고 아랫간에 늘어놓은 부엌 세간을 정돈하며 있었다.

고모는 하는 수 없이 돌아와서 남았던 시량과 찬을 그에게로 보내주고 나서 어둑어둑할 때 문을 잠그고 영희와 같이 큰집으로 건너갔다. 근 보름이나 앓아 누운 그의 백부는 눈물을 흘리며 깊은 한숨만 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소년 과부로 50이 넘은 그의 고모는 건넌방에 영희를 끼고 누워서 밤이 이슥하도록 훌쩍거렸다. 영희의 흘흘 느끼는 소리도 간간이 안방에까지 들렸다.

아랫목에 누웠던 영감이

“여보 마누라. 좀 가 보시구려.”

하는 소리에 잠이 들려던 노마님이 건너갔다. 조금 있다가 이 마누라가지 훌쩍훌쩍하며 안방으로 건너왔다. 미선을 가슴에 대고 반듯이 드러누운 노인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십칠야의 교교한 가을 달빛은 앞창 유리 구멍으로 소리 없이 고요히 흘러들어 와서 할머니의 가슴에 안기어 누운 영희의 젖은 베개 밑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9

평양으로 나온 우리 일행은 그 이튿날 아침에 남북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그 후 이 개월쯤 죄어 나는 백설이 애애한 북국 어떠한 한촌 진흙방 속에서 이러한 Y의 편지를 받았다.

“형식에 빠진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있어 벌써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아니오> 어느 때든지 자기의 생활에 새로운 그림자(그것은 보다 더 심한 것이거나 혹은 보다 더 악한 것이거나 하여간)가 비쳐 올 때나 혹은 잠든 나의 영이 뛰놀 만한 무슨 위대한 힘이 강렬히 자극하여 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군에게 무엇이든지 기별하고 싶은 사건이 있기 전에는 같은 공기 속에서 같은 타임 속에서 동면 상태로 겨우 서식하는 지금의 나로는 절하고 재적으로 누구에게든지 또는 무엇에든지 붓을 들지 않으려고 결심하였소. 자기의 침체한 처분, 꿈꾸는 감정을 아무리 과장한들 그것이 결국 무엇이오….

그러나 지금 펜을 들어 이 페이퍼를 더럽히는 것이 현재의 내가 무슨 새로운 의의를 발견하고 혹은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게 된 까닭은 아니오. 다만 내가 오래간만에 집을 방문하였다는 것과 그 외에 군이 어떠한 호기심을 가지고 심방하였던 3원 50전에 삼층 양옥을 건축한 철인의 철저한 예술적 또한 신비적 최후를 군에게 알리려는 까닭이오.”

여기까지 읽은 나는 깜짝 놀랐다. 손에 들었던 편지를 책상 위에 놓고 바로 앉아서 한 자 한 자 세듯이 하여 가며 계속하여 보았다.

“…사실은 지극히 간단하나, 이 소식은 군에게 비상한 만족을 줄 줄로 믿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시어 꾸며 놓으신 옥좌에 올라 앉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치 않으면 아니 될 시기라고 생각한 그는 신의로써 만든 3원 50전짜리 궁전을 이 오탁에 싸인 속계에 두고 가기 어려웠을 것이오. 신의 물은 신에게 돌리리라. 처치하기 어려운 삼층집을 맡길 곳이 신 이외에 없었을 것도 괴이치 않은 것이겠소. 유곽 뒤에 지어 놓았던 원두막 한 채가 간밤 바람에 실화하여 먼지가 되어 날아간 뒤에 집주인은 종적을 감추었다-라고 하면 사실은 지극히 간단할 것이요. 그러나 불은 왜 놓았나?”

나는 이하를 더 읽을 기운이 없다는 것같이 가만히 지면을 내려다보고 앉았었다. 의외의 사실에 대한 큰 경이도 아니려니와 예측한 사실이 실현됨에 대한 만족의 정도 아닌 일종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다대한 호기심과 기대에 긴장하였던 마음을 일시에 느즈러지게 한 상태였다. 나는 또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추위에 못 견디어서-라고 세상 사람들은 웃고 말 것이오. 그리고 군더러 말하라면 예의 현실 폭로라는 넉 자로 설명할 것이오. 그러나 그가 삼층집에서 내려와 자기 집 서재로 들어가지 전에는 불을 놓았다고도 못 할 것이오. 또 현실 폭로의 비애를 감하여 그리하였다 하면 방화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오. 신의에 따라서만 살 수 있다는 신념을 확집한 그는 인제는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다고 삼층 위에서 뛰어내려온 것이오. 그리고 그 건축물은 신에게 돌린 것이오.

아아 그 위대한 건물이 홍염의 광란 속에서 구름 탄 선인같이 찬란히 떠오를 제 그의 환희는 어떠하였을까. 그의 입에서는 반드시 할렐루야가 연발되었을 것이오. 그리고 일 편의 시가 흘러 나왔을 것이오-마치 네로가 홍염 가운데의 로마 대도를 바라보며 하프에 맞춰서 시를 읊듯이. 아아, 그는 얼마나 위대한 철인이며 얼마나 행복스러운가…… 반열 반온의 자기를 돌아볼 제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매도치 않을 수 업소….”

10

기뻐하리라고 한 Y의 편지는 오직 잿빛의 납덩어리를 내 가슴에 던져 주었을 따름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골라 가며 또 한 번 읽은 뒤에 편짓장을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채 드러누웠었다. 음산한 방 속은 무겁고 울적한 나의 가슴을 더욱더욱 질식케 하는 것 같았다.

까닭 없이 울고 싶은 증이 나서 가만히 누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뛰어 일어나서 방 밖으로 나섰다. 아침부터 햇발을 조금도 보이지 않던 하늘에 뽀얀 구름이 건너다보이는 앞산 위까지 쳐져서 방금 눈이 퍼불 것 같았다. 나는 얼어 붙은 눈 위를 짚 신발로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R동 고개로 나서서 항상 소요하던 절벽 위로 향하였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통행할 만한 길 오른편 언덕에 거무스름하게 썩어서 문정문정하는 짚으로 에워싼 한칸 집이 있고, 그 아래에는 비스듬하게 짓다가 둔 헛간 같은 것이 있다. 나는 늘 보았건만 그것이 본체가 무엇인지 아직껏 물어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삼층 양옥의 실화 사건의 통지를 받고는 새삼스럽게 눈여겨 보였다. 나는 두세 걸음 지나가다가 다시 돌쳐서서 언덕으로 내려와서 사면팔방을 멍석으로 꼭 틀어 막은 괴물 앞에 섰다.

나는 무슨 무서운 물건이나 만지듯이 입구에 드리운 멍석 조각을 가만히 쳐들고 컴컴한 속을 들여다보았다. 광선 한 줄기 들어 오지 않는 속에서는 쌀쌀한 바람이 휙 끼칠 뿐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공연히 마음이 선뜩하여 손에 쥐었던 거적문을 놓으려다가 다시-자세히 검사를 하여 보았다. 그러나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기둥 두 개를 나란히 늘여 놓은 위에 나무 관 같은 것을 놓고 그 위에는 언젠지 대동강 변에서 본 봉황성 대가리 같은 단청한 목판짝이 얹혀 있었다. 나는 보지 못할 것을 본 것같이 꺼림하여 마른침을 탁 뱉고 돌아서 동둑 위로 올라왔다.

나는 눈에 묻힌 절벽 위에 와서 고총 앞에 놓인 석대에 걸터 앉으려다가 곁에 새로 붉은 흙을 수북이 모아 논 것을 보고 외면을 하며 일어나왔다. 이것은 일전에 절골에선가 귀신이 씌어서 죽었다는, 무녀가 온 식전 굿을 하던, 떼도 안 입힌 새 무덤이다.

저녁 밥상을 받고 앉아서 주인더러 등너머의 일간두옥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그것이 이 촌에서 천당에 올라가는 정거장이라우.”

하고 웃으며 동리에서 조직한 상계의 소유라고 설명하엿다. 이 촌에서 난 사람은 누구나 조만간 그 곳을 거쳐야만 한다는 묵계가 있다는 그의 말에는 무슨 엄숙한 의미가 있는 것같이 들리었다. 나는 밥을 씹으며 저를 손에 든 채로 그 내력을 설명하는 젊은 주인의 생기 있는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앉았었다. 그 순간에 나는 인생의 전국면을 평면적으로 부감한 것 같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 동시에 무거운 공포가 머리를 누르는 것 같았다.

그 날 밤에 나는 아무것도 할 용기가 없어서 몇몇 청년이 몰려와서 떠드는 속에 가만히 드러누웠었다. 어쩐지 공연히 울고 싶었다. 별로 김창억을 측은히 생각하여 그의 운명을 추측하여 보거나 삼층집 소화한 후의 행동을 알려는 호기심은 없었으나 지금쯤은 어디로 돌아다니나 하는 생각이 나는 동시에 작년 가을에 대동강 가에서 잠깐 본 장발객의 하얀 신경질적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다.

과연 그가 그 후에 어디로 간 것은 아무도 몰랐다. 더구나 뱀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꺼리는 평양에 나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몽상 외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평양에 왔다. 그의 후취의 본가가 있는 곳이다.

…일 년 열 두 달 열어 보는 일이 없이 꼭 닫은 보통 문밖에 보금자리 같은 짚더미 속에서 우물우물하기도 하고 혹은 그 앞 보통 강가로 돌아다니는 걸인은 오직 대동강 가의 장발객과 형제거나 다만 걸인으로 알 뿐이요, 동리에서도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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