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당구왕 최카피 에피소드 1

일어나니 단톡방에 문자가 난리다.
잠깐 나갔다 와야 해서 저녁에 이어서 쓸께요.
녀석은 친절하게도 벌써 친구들에게 소문을 퍼뜨려주었다.
친구들은 단톡에서 나를 판에 앉히려고 작전을 짜고 있었다.
이제는 어지간하면 눈치를 챌 수 있다.
녀석들에게 일침을 가하려고 채팅창을 통해 ‘이녀석들아 내가 호구냐?’ 라는 단어를 적어 올리려는 순간 이미 몇 개의 메시지가 올라가고 있었다.
원래 쓰려던 글을 지우고 스케쥴을 맞추겠다는 답글을 달자.
녀석들은 난리가 났다.
더 이상 글을 보는 것은 화병이 생길 것 같아 핸드폰을 밀어두었다.
별안간 핸드폰이 떨리더니 좋아하는 멜로디가 흘렀다.
“웬일이냐?”
“ㅋㅋ 연초에 온다며?”
“그래서 연락했냐? 통 연락도 없더니.”
“울고 있을까 전화했지. 위로해줄려고.”
“이게 위로냐? 조롱이지.”
“뭘 그렇게 심각하냐. 암튼 지갑 두둑히 가져와라.”
“…”
전화를 준 녀석은 ‘호’라는 녀석으로 오랜만에 전화하더니 다짜고짜 조롱을 한다.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이미 통화는 끝나 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려고 샤워를 하고 거울을 올려보니 이마에 붉은 핏줄이 드러나 보였다.
친구들의 조롱을 한 두번 받아본 것도 아님에도 이렇게 감정 조절을 못하는 것을 보니 ‘나이를 헛 먹었군.’ 하고는 독백을 뱉어본다.
자고 일어나니 친구들의 호구 인증으로 기분이 나쁘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만 단톡창을 다시 보니 녀석들에게 일침을 가하지 못한 것이 왠지 분했다.
다시 톡으로 말하기에는 속이 좁아보여서 마음을 가라 앉히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1월 7일 까지는 아직도 열흘 정도가 남아있다.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실력을 조금만 늘려두는 것이 지금으로는 최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전에 전화 준 호와 통화를 하려고 재발신을 눌렀다.
“오늘 바쁘냐?”
“연말이라 애들 진학상담 해줘야 해서 약간 바쁘기는 한데 왜?”
“우선 갈테니가 기다리고 있어라.”
“어딜? 여길?”
“바로 간다.”
호라는 녀석은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 있는 학교에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담임을 맡고 있어 방학을 앞두고 애들 진로 상담으로 바쁜 듯 하였다.
그러나 나 역시 발등의 불이 붙은 상태라 녀석의 사정을 헤아릴 겨를은 없었다.
차를 몰고 급하게 녀석이 있는 학교로 달려갔다.
녀석을 보니 아까 단톡방에서 놀려대는 글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다짜고짜 주먹으로 녀석의 머리와 어깨 팔을 두드렸다.
평소에 내가 그리 화를 내는 성격이 아닌 것을 알고 있기에 녀석은 그저 어이 없게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뭐하는 짓이야. 사람들 많은데…”
그제서야 주변에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보였고, 얼굴이 붉게 물들며 뻘쭘해졌다. 녀석도 뻘쭘한지
“우선 올라가자.”
“그러자.”
뻘줌해진 우리는 피하듯 자리를 옮겼고, 옥상에 있는 흡연실로 자리를 이동했다.
뜬금 없이 맞은 녀석도 체면이 서지 않는지 올라가서는 냅다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이 자식아.”
“미안.”
고분고분해진 나는 체면을 겨를 없이 사과의 말부터 전했다.
“얼굴을 보니까 아까 카톡이 떠올라서…”
“도대체…”
“미안하다.”
녀석은 분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는지, 담배를 한대 물었다.
옆에서 나는 담배에 불을 붙여 주며 함께 담배를 물어 불을 붙였다.
“근데 그게 그렇게 열받았냐?”
“아닌 그건 아닌데, 괜히 감정이 상했나봐. 정말 미안하다.”
녀석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녀석의 체면도 있을텐데 학교 다닐 때 하던 버릇이 나와버렸다.
“그래도 그게 뭐냐? 선생님들도 그렇지만 학생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냐?”
“아~ 정말 미안하다. 이따가 밥 살께 봐주라.”
평소에는 하지 않던 애교까지 피우며 녀석을 달래주었다.
“알았다. 그런데 이 시간에 왠일이냐? 그것이 이렇게 급하게?”
녀석과 화해하고 아까 마음 먹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캬캬. 엄청 신경쓰였네. 너 답지 않게.”
“그러게 이번에는 정말 신경이 쓰이네. 그러니까 이따가 빨리 끝내고 당구 강의 좀 해주라.”
“당구 강의가 어딨어 같이 치다보면 자동으로 강의가 되는 거지. 그렇게 급하다는데, 오늘은 일찍 끝내고 같이 당구를 쳐주마.”
수능은 끝났고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아 녀석은 일찍 일을 끝냈고, 근처에 있는 돈까스를 먹자고 말했다.
녀석은 소화도 잘 못 시키면서 돈까스를 참 좋아했다. 먹고나면 항상 속이 좋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말이다.
주문한 돈까스를 보자 최근에 본 먹방에서 돈까스에 소금을 뿌려 먹으면 맛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소금도 약간 달라고 했다.
소금을 조금 뿌려 먹어보니 색다른 맛이었지만 그렇게 극찬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녀석은 밥 한공기가 많다고 나에게 반 정도나 덜어주며,
“돈도 네가 내는데, 밥이라도 많이 먹어야지.”
“그래 고맙다. 우리 강사님께 밥을 사드려야 잘 알려주시겠죠.”
“어제 송과는 무슨 일로 만났는데?”
“그냥 강남역에 놀러 갔다가 전화하니까 나오더라고… 술 한잔 하고 어찌나 당구를 치자고 하던지 못 이겨주는 척 쳐줬다.”
“송은 잘 지낸데?”
“걍 나도 오랜만에 봐서…”
말을 해주려고 하다가 송의 프라이드도 있을테니 내가 말하는 것 보다는 직접 말하겠지 하고 말을 흐렸다.
“다 먹었으면 가볼까?”
호는 가끔 선생님들과 당구를 친다고 말했다.
사구 250점 삼구 25점을 놓고 치는데 내 주변에 있는 친구 중에는 녀석이 가장 당구를 잘 쳤다.
녀석은 함께 일하는 친한 선생님이 생겼는데, 400점 정도를 놓고 친다고 그 선생이 자기 주변에서는 가장 잘 친다고 말했다.
내심 당구 강의를 해주나 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냥 사구로 치기로 하고 나는 8개 녀석은 25개를 점수판 주판으로 올렸다.
어제 처럼 초구는 내가 쳤다. 오늘도 첫발을 실패였다.
녀석은 저녁을 먹고 힘이 났는지 첫큐부터 다득점이었다.
살살 치는 것 같은데, 공이 멀리서 용케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아주 살살 치며 다득점을 이어갔다.
녀석이 25개의 주판알을 모두 치는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마무리에 들어갔지만 다행히 쉽게 치지는 못했다. 내 차례가 돌아왔다.
당구를 많이 쳐본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이상했다.
멀리서 보면 붉은 공 두개 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 쳐보면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이런 것 쯤 8번 치는 것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잘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세상이 둥근 것 처럼 공이 둥글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어렵게 자세를 잡고는 녀석이 하는 것 처럼 살살 쳐보았다.
한참을 내가 치는 것을 보더니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우선 큐를 좀 더 짧게 잡아.”
 역시 선생의 가르침은 대단했다. 녀석이 말한대로 큐를 짧게 잡아보니 좀 더 칠만했다.
그 가르침으로도 벌써 2개를 쳐내었다.
“카피 넌 힘들겠다. 웬만하면 당구를 치지 말아야 겠어.”
“왜?”
“기본적으로 자세가 별로야.”
“넌 태어날 때 부터 자세가 좋았냐! 실 없는 말 하고 있어.”
“음… 역시 자존심은 있군. 좋은 자세야.”
“뭔 소리야.”
녀석은 지겹다는 듯이 큐로 각을 재더니 마무리를 쉽게 풀어냈다.
점수판에 타임벨을 누르더니 음료수를 하나더 주문했다.
“여기는 아이스티가 맛있어.”
녀석의 말대로 아이스티가 맛있었다.
“카피야!”
“왜?”
녀석에게 너무 쉽게 보이는 것 같아 뾰루투룽해졌다.
“너 공이 어떤 방향으로 굴러가는지는 알고 있냐?”
“공이 어떤 방향으로 굴러간다니?”
녀석은 시범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공을 아무 것도 없는 빈 쿠션으로 보냈다. 당연히 나의 생각대로 공이 굴러갔다.
“이렇게 굴러가는 것은 알겠어?”
“그 정도는 알지.”
“근데 왜 아까는 그렇게 안치냐?”
“뭔 소리야?”
녀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공이 굴러가는 방향대로 쳤는데, 그렇게 치지 않았다니 말이다.
그러더니 아까 내가 쳤다는 공이라며 공을 세웠다. 그리고는 내가 친 것과 같이 공을 쳐보였다.
“봐봐. 아까 니가 이렇게 쳤잖아?”
“뭐가 이상해?”
정말 이해할 수 없어 물었더니, 연신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보기에는 넌 공이 굴러가는 방향부터 배워야겠어. 사실 자세랑 큐를 잡는 방법도 어색하지만 그것보다 머리를 제대로 못 쓰는 것 같아.”
매우 당황했다. 머리를 제대로 못 쓴다는 말을 언제 들어봤던가?
사회 초년생일때 첫 직장 상사에게 들었던가? 아님 그 전에 군대 선임이었던가?
암튼 직설적인 녀석의 발언에 당황할대로 당황했다.
녀석은 공이 나아가는 방향을 몇 가지 일러 주었다. 그리고 회전을 주었을 때 공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 알려주었다.
다만 정말로 내 머리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가 지근거렸다.
갑자기 내가 왜 녀석과 당구를 치자고 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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