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 깍던 노인

벌써 4년도 더 된 이야기다. 내가 공을 배운지 얼마 안돼서 일산에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일산 시장에 가기 위해 일산역에서 일단 전철을 내려야 했다.

일산역 맞은 편 길가에 앉아서 팁을 깍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수원에서 대회를 참가하고 팁에 불만이 많아 팁을 깍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팁 교체 하나 가지고 에뉴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데 가 깍으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깍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팁을 붙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하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깍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집에 가야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깍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큰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깍는다는 말입니까? 할아버지 외고집시시군요.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데 가서 깍으시우. 난 안팔겠소.”

그러더니 붙였던 팁을 떼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집에는 좀 늦게 가겠다 생각하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깍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어 지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깍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깍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전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큐대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집에 늦게 도착할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외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비싸게 부른다. 상도덕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 수록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일산역 처마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줄어든 셈이다.

다음 날 동호회에 와서 큐대를 내놨더니 다들 이쁘게 깍았다고 야단이다. 이전 팁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롤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28점을 치는 대부님의 설명을 들어 보니, 팁에 배가 너무 부르면 공을 치다가 미끄러지는 일이 많아 삑사리가 많이 나고, 너무 평평하면 공의 정확한 부분에 큐를 닿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선골과 팁이 완벽하게 일자로 바뀌고 상대와 하대의 꿀럭거리는 곳이 사라졌다고 한다.

요렇게 꼭 알맞게 만드는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을까?”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막걸리에 전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없었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보았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일산역 처마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으로 날아갈 듯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큐대를 깍다가 유연히 처마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패러디 출처 : 방망이 깍던 노인 (윤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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