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알바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를 팔아야 할 때이다. 그래도 시세가 많이 올라 20만원의 현금이 생겼다.

매끈한 지폐 스무장이 손가락 사이로 들락날락 거린다.

동시에 빤짝이는 눈초리가 다른 사람들이 볼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반질거리는 유리창을 통해 머리와 옷 매무새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고양세무사를 지나 건너편 길을 걸으며 매장에 있는 유리를 남기지 않고 들여다 보았다. 유리창에는 먼 옛날 철학자를 연상시키는 더부룩하게 기른 수염이 엉클어졌다.

‘치기는 쳐야겠다.’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큐가방을 들고는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

라페스타 거리를 한참을 걷자, 자주가는 ‘카리스당구클럽’ 간판이 보였다.

당구장에 들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심장이 흥분했는지 붕 떠 있는 느낌이다.

외상으로 깔아 둔 15만원 남짓을 갚으면 남은 돈이 지출보다도 많다. 머리는 들어가지 마라 하지만 익숙하게 엘리베이터 한 켠 깊숙히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에 내려 창으로 당구장을 들여다보자 주인은 신문을 들고는 더운지 휴대용 선풍기로 자신을 비추고 있다.

용기가 났다. 의기양양하게 들어서자 문에서 ‘찌르릉’ 하며 손님을 반긴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주인은 반가운 얼굴로

“오랜만이시네요.”

하며 말과는 다르게 밀려있는 외상을 갚으라는 표정이다.

인사를 하고는 한쪽 소파에 몸을 기댔다. 들어온지 한 시간도 못 되어 송두리쨰 내주기는 싫었다. 그리고 외상을 모두 다 갚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겨 다만 만원이도 지갑 귀퉁이에 채워두고 싶었다.

주인이라고 에어컨을 마음대로 켤 수 있는지 시원한 바람이 ‘쌕쌕’ 거리며 다가온다.

옷걸이에 점퍼를 걸어두는 사이에 주인은 시원한 탄산 한잔을 소파 앞 테이블에 놓았다.

손님이 없는 한산한 시간임을 다시 금 파악하자, 머리는 앞으로 닥칠 상황을 준비하며 이런저런 계획을 세운다.

당구장이 아니어도 돈 쓸일은 많다. 하지만 20만원의 돈으로 최대 한도까지 활용해야 할 것이다.

월세도 밀려서 이번 주면 쫏겨날 예정이지만 가진 돈이 밀린 월세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다른 것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당구대에 공이 이리 가고 저리 가고 있을 때 머리속으로 외상은 10만원 갚자고 말한다. 그래야 오늘 공을 치고 있다 저녁이라도 먹고 찜질방에서 잠을 청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0만원을 갚고 당구비로 5만원 정도 쓰고 운 좋으면 누군가에게 저녁을 얻어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장이 인심을 쓰듯 사줄 수도 있고…

그러면 내일도 조금은 풍족하게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연습구를 치고 있자, 한참을 바라본 사장은 오늘은 돈이 있을테니 왔을테지 하는 눈빛이다.

그 모습에 심술이 피어나 담배 한 개피 더 얻어 피우고 싶어졌다.

“사장님 같이 담배나 피우시죠.”

올커니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그러시죠.”

하며 담배갑을 들고는 흡연실로 먼저 들어선다. 자연스레 담배를 주는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넙죽 받아 들었다.

사장은 직접 라이터로 불까지 붙여준다.

“휴우~”

깊게 한 모금을 빨고는, 미안한 표정을 시선을 내렸다.

“외상을 갚아야 하는데, 돈이 조금 모자라서 10만원만 갚고 남은 돈은 조만간 갚을께요.”

사장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싸늘한 시선을 던진다. 그러고는 바로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 연기를 뱉더니,

“그러시죠. 요즘 경기가 어렵죠?”

하며 미소인지, 찌푸린 얼굴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띄운다.

첫째 난관은 해결되었다.

카운터로 가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현금을 내었다. 괜히 의기양양해져서 팔짱을 끼었다.

“손님도 없는데, 오랜만에 공이나 섞으시죠.”

“아직 몸이 덜 풀려서 조그만 더 풀고 하시죠.”

“조금 있으면 알바도 오니, 이따 같이 밥이든 술이든 걸고 가볍게 한 게임 가시죠.”

권유인지 강요인지 모를 듯한 위압도 있고, 잘난체 하는 듯한 모습이 보기 싫어,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구를 친 당구대를 모포로 살짝 훔치더니 뱅킹 포지션으로 공을 깔았다.

뱅킹의 승자는 사장이었다. 엷은 미소를 띄우며 초구 배치로 공의 자리를 잡는다.

초구 득점, 초구가 들어가자 연신 신이나며 연속으로 6득점을 해버린다.

마지막으로 친 흰공이 노란공과 한참 거리를 두며 득점에 실패하자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공을 치려 자세를 잡고 노란공을 부드럽게 밀었다.

우리의 공들이 다이 표면에서 이리 가고 저리 갈 때, 머리속으로 여러 가지 궁리를 한다.

상대방 공이 다른 곳으로 미끄러지면 안도의 숨이 나왔고, 내공이 목적구에 닿지 않으면 한탄의 숨이 나왔다.

흰공이 2적구에 맞으며 결국 사장은 돗대를 남겨두었다.

결국 이렇게 질 것을 예상하니 화나났다. 분풀이가 하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다. 일어나 때릴 수도 없고 책망할 수도 없다.

“아이구”

사장은 인상을 한 번 찌푸리더니, 미안한지 허리를 깝죽거린다. 미안한 표정이라고는 1도 없이, 허리만 깝죽깝죽하는 것 뿐이다.

마음 한 켠에는 일말의 희망을 남겨 ‘돗대 매너’를 지키길 바랄 뿐이다.

마침 놈이 한 손으로 큐대를 쑥 밀자 공은 부드럽게 왼편으로 틀어졌다.

‘짧아져라 짧아져라’ 마음속으로 빈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며, 놈이 친 공이 목적구에 닿는 것을 보고만 있을 뿐이다.

일부러 내쪽으로 몸짓을 하고는 고갯짓을 하였다. 그러고는 몸을 ‘탁탁’ 털며 긴 한숨 소리가 들린다.

몸을 털며 내 얼굴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본다. 어떤 표정인지 자세히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 때 출입구에서

“안녕하세요.”

하며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왠 여인인가 하며 들여다보니, 이 깜깜한 세상을 밝혀줄 정도의 미인이다.

“어 왔어!”

사장은 공을 치우며 오만하게 대답을 한다. 그것으로 알바인 것을 짐작하였다.

“이리 와서 이 손님이랑 당구 한 게임 쳐드려.”

하는 소리가 분명치 않게 들렸다. 그 말을 이해하는 데까지 수 십초가 걸렸다.

놈은 카운터로 돌아가더니 그녀가 다가와 싱긋 웃고는

“한 게임 괜찮으세요?”

묻는다.

“수지가 어떻게 되시는지?”

묻자, 여알바는 방금 친 스코어 판을 보더니

“20점 치는데요. 저랑 같은 점수를 놓으면 되겠네요.”

나이는 스물셋 아니면 넷 정도 들어보인다. 눈도 입도 코도 좋다. 특히나 뺨이 좋았다.

허리는 호리호리한데, 그렇게 큰 키는 아니다.

한 손으로 큐대를 집는다. 손도 그렇게 이쁜 줄 몰랐다. 조그만 손으로 큐대를 들고 있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큐대를 잡은 저 손으로 공을 치려 할 때 살짝 눈이 감겼다. 다이에 손이 올라가는 모습은 어찌나 섹시한지 모르겠다.

요리조리 공을 치다 앉아 있는 내 쪽으로 등이 보인다. 여성의 냄새와 따뜻한 기운이 돌더니 곧 달아나 버리자 어쩐지 불쾌했다.

공을 치는데 공에는 눈이 안 가고 앉아 있는 그녀가 요염히 앉아 있는 곳에만 신경이 쓰였다.

도저히 못 참고 눈을 지긋이 감자 감은 눈을 통해 그 여자의 얼굴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보인다.

큐를 만지던 그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는다. 비단결 같은 손의 촉감을 오래 만끽하기도 전에 공이 맞는 소리에 눈을 뜨자, 저 멀리서 콧 노래를 부리며 지 공치는 것에만 신경이 곤두서있다.

큐대를 든 여성 앞에서 이렇게 쾌감을 느끼고 넘치는 희열을 맛보기는 처음이다.

게임이 거의 끝나간다. 그것이 너무 싫었다.

마무리를 하려고 큐대에 초크를 바른다. 검은 팁에 파란 초크를 바르는 것이 우스웠는지 그녀는 씽긋 웃다가 그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무는 것이 가슴을 깨무는 듯 부끄럽기도 하고 아프게 좋다.

그래 빙긋 웃어 주자, 그녀는 아주 툭 터져 버렸다. 그리고도,

“왜 웃으세요?”

하고는 은근히 조롱 비슷하게 말하고는 마무리를 넣어버렸다.

게임이 끝나자 마음은 공연히 싱숭생숭해진다. 어디 말할 시간이라도 늘려보려고 술이라도 한 잔 하자고 하고 싶지만, 음료를 한 잔 청했다. 음료대로 가더니 탄산을 떠가지고 나왔다.

시원하게 음료를 들이키고는 카운터로 향해

“얼마요?”

하고 뻔히 아는 요금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3만원이요.”

하고는 손바닥을 펴보인다. 그 손을 곱고는 ‘손이 참 이쁘군요.” 하고 싶지만 참고 다음으로 좋은 기회를 물릴 작정을 하고는 고운 손에 지폐 네장이 떨어졌다.

“또 봐요.”

하고는 문으로 나올 때,

사장이 어깨 동무를 하고는

“형 술 한 잔 사줘야지”

하며 너스레를 떨며 끌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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